[김숨의 위대한 이웃]검은 개와 마지막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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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4-05-06 22:12본문
나는 멀리서 왔다. 누구나 멀리서 온다. 멀리서 와서, 잠시 잠깐 ‘착지’했다 멀리 떠난다. 아무도 서 있지 않는 텅 빈 정류장에 버스가 머무는 시간보다 잠시 잠깐이다. 그 잠시 잠깐 사이엔 무수한 ‘때’가 있다. 크게는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코헬렛 3장 2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사이엔 눈금자의 눈금처럼 헤아릴 수 없는 때가 있다. 울 때와 웃을 때, 노래할 때와 노래하지 않을 때, 떠날 때와 머물 때…. 심을 때와 심긴 것을 뽑을 때 사이엔 때와 함께 우리가 아는 계절과 알지 못하는 계절이 있다.
이곳엔 오래된 정류장이 있다. 그리고 정류장만큼이나 오래된 슈퍼가 있다. 그 슈퍼에는 백발의 여인이 있다. 슈퍼에서는 정류장을 지나가는 몇개 안 되는 버스들의 버스표를 판다. 여인은 첫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기 전에 슈퍼 문을 열고,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슈퍼 문을 닫는다. 밤이 꽤 깊어서야 정류장을 지나가는 마지막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여인은 슈퍼 불을 환히 켜둔다. 담배나 라면, 술을 사려는 손님조차 없는 한겨울 밤에도 여인은 마지막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고 나가서 슈퍼 문을 닫고 불을 끈다. 나는 그제야 슈퍼 한쪽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르며 검은 털로 뒤덮인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여인은 내게 물과 먹을 걸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그 여인의 개라고 말한다. 일흔이 넘은 자신의 생에(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은 나를 자신의 곁에 매어두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여인이 슈퍼 미닫이문 옆에 늘 놓아두는 물로 혀를 축이고 정류장으로 간다.
정류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서 있지 않다. 아무도 내리지 않고,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간다. 버스에 실린 빈 의자들이 정류장을 지나간다. 강원 화천군 외진 마을에 덩그러니 있는 정류장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세상의 모든 정류장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와서 내리는 사람도, 버스를 타기 위해 그곳까지 온 사람도, 그냥 그곳에 와서 서성이던 사람도 결국은 떠나는 곳이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초코파이 상자처럼 네모반듯하고 제법 긴 의자가 놓여 있는 정류장은 때때로 아주 작아 보인다. 모래알처럼 작아 보인다. 정류장은 어쩌면 모래알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정류장을 모으면 광활한 사막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버스가 달려온다. 정류장에 정확히 선다. 모든 버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류장에 조금 못 미쳐 서는 버스도, 정류장을 지나쳐 서는 버스도 있다.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누군가 내렸다면 나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을 것이다. 누구든,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와 정류장에 내린 그 누군가를 내 검은 온몸으로 반겨줬을 것이다.
늙고 왜소한 여자가 정류장으로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느릿느릿 걸어온다. 늙은 여자는 혼자다. 늙은 여자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는 늙은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는 슈퍼의 단골이다. 바라보는 것은 시작이다. 바라보는 것에서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움직인다. 내가 바라보는 것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사람을 볼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람을 바라볼 때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버스가 온다. 늙은 여자가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떠난다. 어스름이 내린다. 여인이 슈퍼의 불을 밝힌다. 나는 슈퍼로 가 여인이 내 밥그릇에 부어 놓은 밥을 먹고 티브이 소리를 듣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참외와 오키나와 소년’ 우에즈 노리아키씨
그녀는 느리다, 아름답다, 임하은씨
‘그릇 빚는 남자’ 박현원 도공
조금 있으면 마지막 버스가 지나갈 것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도, 별도 안 떠 하늘은 나만큼이나 검은 거대한 구멍 같다. 나는 저 구멍 속에 있을 셀 수 없이 많은 정류장들을 생각한다. 누군가 서 있는 정류장, 아무도 서 있지 않는 정류장, 하루 종일 버스가 한 대밖에 지나가지 않는 정류장, 버스가 10분 5분 간격으로 지나가는 정류장, 버스가 더는 지나가지 않는 잊힌 정류장….
마지막 버스가 달려온다. 누가 타고 있을까?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을까? 그 누구는, 혹은 그 아무도는 당신일 수도 있다.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두고 모종의 합의를 했다는 중국의 주장을 필리핀이 또다시 부인했다. 중국은 필리핀 전 정권에 이어 현 정권과도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필리핀이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며 남중국해 ‘신사협정’을 둘러싼 양측 공방이 길어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래플러·AP통신에 따르면,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과 에두아르도 아노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각각 성명을 내 중국의 주장을 두고 사악한 계략 완전히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다고 비판했다. 테오도로 장관은 국익을 훼손하는 어떠한 제안에도 동의하거나 약속한 적 없다고 밝혔으며, 아노 보좌관은 불법으로 조작된 9단선 혹은 10단선을 전제로 한 어떠한 합의도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9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성명은 전날 필리핀 주재 중국대사관이 양국이 남중국해 세컨드 토마스 암초를 관리하기 위한 ‘새 모델’에 합의했다고 밝힌 것에 대한 반발이다.
중국대사관은 그 ‘새 모델’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올해 초 남중국해를 관장하는 필리핀 서부사령부가 (국방장관과 국가안보실을 포함한) 지휘계통의 모든 주요 관리들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반복 확인했다며 장관과 보좌관을 특정했다.
중국의 이러한 주장에는 필리핀 현 정권에서도 남중국해에 관한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의미가 반영됐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 신사협정’을 주장하는 것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필리핀 주재 중국대사관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시절인 2016년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의 세컨드 토마스 암초를 관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2022년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이 이를 부인하며 받아들이지 않자, 중국대사관은 지난 3일 처음으로 그 내용을 공개하며 필리핀을 재차 압박했다.
중국대사관이 낸 성명에 따르면, 양국은 암초 주변에서 소규모 어업은 허용하는 대신 군, 해안경비대, 기타 관용 비행기와 선박과 접근은 제한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합의했다는 것이 중국의 설명이다. 중국대사관은 필리핀이 지난 7년 동안은 이 협정을 존중했으나 이후 자국의 정치적 의제에 따라 협정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전임 두테르테 정권에서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 ‘신사협정’을 맺었는지를 둘러싸고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후 내가 기억하는 건 ‘현상 유지’라는 말뿐이다. 서면합의는 없었다. 만약 그것이 신사협정이었다면 남중국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비밀 합의가 있었다면 이제 파기하겠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지난 3월 기재부에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 이어 국무총리와 국가기관 51곳 기관장의 ‘이임식 및 취임식 비용’도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정보공개 청구는 세금이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주요 국가기관의 이·취임식 비용을 전수 조사, 비교·분석해 봤다.
[주간경향] 지난해 12월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임식이 입길에 올랐다. 행사장 사방에는 10여개의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특히 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추 전 부총리의 당선을 응원하는 뜻으로 읽히는 현수막이 논란을 키웠다. 실제 선거관리위원회가 해당 현수막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런 현수막들은 기관장을 떠나보내는 직원들의 마음을 담았다고 하지만 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임식 비용은 모두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주간경향은 지난 3월 기재부에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 이어 국무총리와 국가기관 51곳 기관장의 ‘이임식 및 취임식 비용’도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 47개(19부·3처·19청·6위원회), 감사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이다. 그 결과 국무총리와 50개 기관장의 이·취임식 비용을 제출받았다. 대체로 5년치 자료를 공개했다. 공공기록물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기관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사항의 예산·회계 자료는 보존기한이 5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검찰청만 유일하게 ‘정보 부존재’, 즉 자료가 없다고 통지했다.
모든 시민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정보공개법 제1조). 정보공개 청구는 세금이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주요 국가기관의 이·취임식 비용을 전수 조사, 비교·분석해 봤다.
■추경호 이임식, 전임보다 29배 많아
기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임식은 정부세종청사 내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와 달리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이임식은 중앙동 4층 로비에서 진행됐다. 넓게 트인 공간이다. 단상에서 이임사를 읽은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임식을 치르고 싶다는 추 전 부총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한다. 기재부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직원들은 계단에 서 있었고, 추 전 부총리가 아래서 직원들을 올려다보며 발언을 했다. 딱딱한 형식을 탈피하려는 시도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논란이 된 건 행사에 동원된 물품이었다. 로비의 주변에는 길게 늘어진 대형 현수막 10여개가 걸렸다. 이들 현수막에는 추 전 부총리의 전신 모습, 기재부 직원들의 메시지 등이 담겼다. ‘추블리,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추블리 FOREVER’, ‘우리의 로또 추경호’, ‘항상 꽃길만 걸으세요’ 등이다. 현수막 맨 아래에는 해당 문구를 만든 국·실의 명칭이 적혔다.
추 전 부총리의 얼굴을 축구선수 몸에 합성해 그린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현수막 속 추 전 부총리는 ‘3선 슬리퍼’를 손에 들고, ‘3선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그가 입은 유니폼에는 ‘달성FC’, ‘3번’(배번)이 새겨졌다. ‘3관왕, MVP 내 다 물끼다(먹을 거다)’라는 글귀도 있다. 추 전 부총리는 당시 대구 달성군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퇴임하고 약 4개월 뒤에 열리는 22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해당 현수막은 추 전 부총리의 3선 성공을 지지하는 취지로 읽혔다(실제 추 부총리는 4·10 총선에서 당선됐다). 이 현수막은 소회를 밝히는 추 전 부총리의 바로 옆에 놓였다.
세종시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현수막을 제작한 기재부 직원이 공무원의 선거 관여를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해당 직원에게 ‘선거법 준수 촉구’ 조치를 내렸다. 기재부 내부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고, 사안이 가볍다는 점을 고려해 낮은 수위의 행정조치를 한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추 전 부총리가 현수막 제작에 관여한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도 추 전 부총리가 지시한 건 아니다라며 다른 현수막도 국·실에서 문구를 제출해 운영지원과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남짓한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에 들어간 비용은 총 495만원으로 파악됐다. 기재부는 현수막 제작에만 230만원을 소요했다. 음향장비와 백드롭(기재부 문양이 들어간 배경막)에 각각 165만원, 100만원을 썼다. 1년 8개월 임기 동안 추 전 부총리의 주요 활동을 담은 영상도 상영됐다.
전임 홍남기 부총리의 2022년 5월 이임식은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진행됐는데 총 17만원이 들었다. 추 전 부총리 이임식 비용의 29분의 1 정도다. 홍 전 부총리는 역대 최장기간(3년 5개월) 부총리를 지냈다. 더 앞서 2018년 12월 김동연 부총리는 이임식 없이 떠났다.
국무총리의 이임식 비용도 지난 10년 동안 100만원을 넘은 적은 없다. 취임식까지 포함해도 그렇다. 2022년 5월 퇴임한 김부겸 총리의 이임식에는 38만2000원이 들었다. 한덕수 현 총리의 취임식(2022년 5월)도 현수막과 선서문 제작 등 92만5000원에 치렀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2022년 11월 이주호 부총리의 취임식에는 12만6000원, 역대 최장수(3년 7개월) 교육부 장관으로 기록된 유은혜 부총리의 2022년 5월 이임식에는 13만6000원이 지출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부 강당을 사용하고 20분 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 일이 없다라며 이·취임식 행사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기관장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고, 해오던 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비용 증가하기도
주간경향이 확보한 국무총리와 50개 기관장(대검찰청은 정보 부존재)의 이·취임식 비용 자료를 종합하면, 대체로 수십만원에서 100만원대 행사를 치른 것으로 분석됐다.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보다 많은 돈을 들인 사례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5월 문승욱 장관 이임식에 532만8500원을 썼다. 산자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가능한 개방된 공간에서 개최해 행사장비 설치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별도 음향장비 등으로 385만원이 들었다. 현수막 제작 비용도 114만8500만원으로 기존보다 100만원이 더 나갔다. 산자부 관계자는 원래 청사 내 대강당에서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트인 장소를 이용하다 보니, 더 큰 현수막이 필요하게 돼 비용도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산자부는 코로나19 이후 2023년부터는 두 차례 이임식을 각각 58만원에 치렀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에 따라 행사 참석 인원이 제한되면서, 온라인 생중계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 예도 있다. 외교부는 2021년 2월 정의용 장관 취임식에 436만원을 썼는데, 429만원(98.3%)이 온라인 생중계 비용이다. 감사원도 2021년 11월 최재해 원장 취임식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계약을 업체와 맺으면서 352만원을 지불했다.
기재부에 이어 경찰청이 이·취임식에 비교적 높은 경비를 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은 2018년 6월 이철성 청장 이임식에 473만2000원을 지출했다. 현수막과 재직기념패 외에도 영상 제작에도 돈이 들었다. 이 청장의 2016년 8월 취임식에도 총 317만원이 사용됐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2021년 5월 이임식도 228만7000원이 들어 다른 기관보다 다소 높게 나왔다. 감사패 100만원, 현수막(3장) 100만원 등이 쓰였다.
10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이·취임식을 치른 기관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취임식에서 현수막에 5만원을 쓴 게 전부다. 산림청도 2017~2022년 4차례 취임식에서 각 6만6000원(현수막)만 지출했다. 2023년 6월 신설된 재외동포청도 청장 취임식에 꽃다발 값 6만500원을 썼다. 법무부와 국방부 등도 일부 이·취임식을 10만원대에 치르기도 했다.
‘3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이·취임식 비용도 살펴봤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퇴임식에 156만2000원, 후임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식(2023년 12월)에 143만2000원을 썼다. 세부내역은 행사장 비치용 화분, 현수막, 꽃다발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12월 이종석 소장 취임식에 23만원, 그해 11월 유남석 소장 퇴임식에는 78만8500원을 지출했다.
독립 수사기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2021년 1월 현판 제막식(출범식)과 처장 취임식을 동시에 개최하면서 총 750만원의 예산을 썼다.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의 이임식 경비는 현수막과 기념패 등 53만5000원이다.
■별도 규정은 없어
대부분 취임식보다 이임식 비용이 더 들었다. 보통 이임식에서는 기관장에게 감사패(재직기념패)를 전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기념패 외에 24만~30만원 상당의 기념품을 지급하기도 했다.
현수막이나 꽃다발은 이·취임식에 기본으로 등장하는 물품이다. 그러나 기관마다 물품의 종류, 개수, 구매·제작에 든 비용 등은 천차만별이다. 감사패 제작 비용 또한 제각각이다. 행사에 다과를 준비한 기관도 눈에 띄었다. 외교부는 2017년 6월 윤병세 장관 이임식에 다과 비용으로 117만9200원을 썼다. 이후 코로나19 등으로 다과를 뺐다가, 지난 1월 박진 장관의 이임식에 다시 다과(115만3940원)가 등장했다.
이는 기관장의 이·취임식의 형식과 절차, 비용 등을 명시한 법령 등 특별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취임식은 개최하지 않아도, 일부 기관처럼 수만원대에 치러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이·취임식을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관의 관계자는 ‘100만~200만원이 넘는 기관도 있다’고 말하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취임식의 형식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밝히는 기관장의 메시지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기관 관계자들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주로 전례를 참고하거나, 상황이니 시기 등에 맞춰 내용과 물품 등을 조금씩 변경하기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관장의 특별한 지시가 있으면 따르겠지만, 아니면 ‘하던 대로 한다’는 뜻이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2021 정부의전편람>에 국무총리와 행정기관장 이·취임식의 예시가 담겨 있기는 하다. 편람은 정부기관이 공식행사를 진행할 때 참고하는 일종의 매뉴얼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내용도 변한다. 편람을 보면, 행정기관 이·취임식을 두고 각 부처 특색에 맞게 운영한다라며 국민의례, 취임사(이임사), 폐식, 인사교환 등의 간략한 식순이 나열돼 있다. 편람은 일부 기관에서는 꽃다발 증정 등을 식순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지자체장들, 그들만의 ‘호화잔치’
4년마다 선거로 뽑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이·취임식 비용은 어떨까. 사실 1995년 ‘민선 1기’ 때부터 줄곧 논란이 됐다. 특히 취임식에 수많은 외부 인사를 초청하고 공연 등을 곁들이면서, 일회성·선심성·전시성 행사에 수천만원이 넘는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995년 6월 당시 내무부는 취임식을 검소하고 간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지침을 지자체에 내렸고, 이에 일부 당선인들이 지방자치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한 적도 있다.
‘호화 취임식’을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자 알아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큰 비용을 들이는 지자체는 여전히 있다. 주간경향은 2022년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민선 8기’ 일부 지자체장의 이·취임식 비용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았다. 우선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진태 강원도지사 등 3명은 취임식을 하지 않았다. 당시 집중호우로 인한 상황 대처나 일회성 행사 개선 방침에 따른 조치였다.
나머지 14개 시·도는 취임식에 수천만원 이상의 예산을 썼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취임식에는 1억6162만원이 들었다. 현수막·초청장 제작 982만원, 음향·조명·무대 설치 등에 5500만원, TV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송출에 9680만원이 지출됐다. 이어 이철우 경북도지사 6200만원, 김태흠 충남도지사 5236만원, 김관영 전북도지사 4192만원, 오영훈 제주도지사 3860만원, 김영록 전남도지사 3500만원, 강기정 광주시장 3378만원 등이 나갔다. 지자체장의 경우 취임식보다 이임식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임식은 보통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선에서 해결했다.
경기도 내 시·군 중에서 강수현 양주시장, 전진선 양평군수, 조용익 부천시장 등 3명의 취임식에 5000만원 이상이 소요됐다. 남양주·수원·시흥·용인·파주·화성시 등 6곳은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현장점검 등을 이유로 취임식을 생략했다. 다만 수원시는 취임식을 전날 갑자기 취소하면서, 계약을 맺고 설치를 마친 영상·음향·조명 등의 비용 3667만원을 지출했다. 화성시도 미리 계약한 영상·음향장비 비용 700만원을 냈다.
서울시 내 구청장을 살펴보면, 조성명 강남구청장이 5914만원을 써서 가장 높았다(이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자료). 문헌일 구로구청장(4703만원), 박강수 마포구청장(3753만원), 류경기 중랑구청장(3700만원), 이성헌 서대문구청장(3442만원) 등 순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이승로 성북구청장, 유성훈 금천구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4명은 취임식을 하지 않았고,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직원을 대상으로만 취임식(205만원)을 열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취임식보다 세금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곳이 많다라며 주민들의 참여로 통제와 감시 체계를 작동해야 한다. 기관장들이 일회성 행사에 세금을 맘껏 사용하지 못하도록 눈치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엔 오래된 정류장이 있다. 그리고 정류장만큼이나 오래된 슈퍼가 있다. 그 슈퍼에는 백발의 여인이 있다. 슈퍼에서는 정류장을 지나가는 몇개 안 되는 버스들의 버스표를 판다. 여인은 첫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기 전에 슈퍼 문을 열고,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슈퍼 문을 닫는다. 밤이 꽤 깊어서야 정류장을 지나가는 마지막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여인은 슈퍼 불을 환히 켜둔다. 담배나 라면, 술을 사려는 손님조차 없는 한겨울 밤에도 여인은 마지막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고 나가서 슈퍼 문을 닫고 불을 끈다. 나는 그제야 슈퍼 한쪽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르며 검은 털로 뒤덮인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여인은 내게 물과 먹을 걸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그 여인의 개라고 말한다. 일흔이 넘은 자신의 생에(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은 나를 자신의 곁에 매어두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여인이 슈퍼 미닫이문 옆에 늘 놓아두는 물로 혀를 축이고 정류장으로 간다.
정류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서 있지 않다. 아무도 내리지 않고,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간다. 버스에 실린 빈 의자들이 정류장을 지나간다. 강원 화천군 외진 마을에 덩그러니 있는 정류장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세상의 모든 정류장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와서 내리는 사람도, 버스를 타기 위해 그곳까지 온 사람도, 그냥 그곳에 와서 서성이던 사람도 결국은 떠나는 곳이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초코파이 상자처럼 네모반듯하고 제법 긴 의자가 놓여 있는 정류장은 때때로 아주 작아 보인다. 모래알처럼 작아 보인다. 정류장은 어쩌면 모래알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정류장을 모으면 광활한 사막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버스가 달려온다. 정류장에 정확히 선다. 모든 버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류장에 조금 못 미쳐 서는 버스도, 정류장을 지나쳐 서는 버스도 있다.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누군가 내렸다면 나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을 것이다. 누구든,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와 정류장에 내린 그 누군가를 내 검은 온몸으로 반겨줬을 것이다.
늙고 왜소한 여자가 정류장으로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느릿느릿 걸어온다. 늙은 여자는 혼자다. 늙은 여자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는 늙은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는 슈퍼의 단골이다. 바라보는 것은 시작이다. 바라보는 것에서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움직인다. 내가 바라보는 것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사람을 볼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람을 바라볼 때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버스가 온다. 늙은 여자가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떠난다. 어스름이 내린다. 여인이 슈퍼의 불을 밝힌다. 나는 슈퍼로 가 여인이 내 밥그릇에 부어 놓은 밥을 먹고 티브이 소리를 듣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참외와 오키나와 소년’ 우에즈 노리아키씨
그녀는 느리다, 아름답다, 임하은씨
‘그릇 빚는 남자’ 박현원 도공
조금 있으면 마지막 버스가 지나갈 것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도, 별도 안 떠 하늘은 나만큼이나 검은 거대한 구멍 같다. 나는 저 구멍 속에 있을 셀 수 없이 많은 정류장들을 생각한다. 누군가 서 있는 정류장, 아무도 서 있지 않는 정류장, 하루 종일 버스가 한 대밖에 지나가지 않는 정류장, 버스가 10분 5분 간격으로 지나가는 정류장, 버스가 더는 지나가지 않는 잊힌 정류장….
마지막 버스가 달려온다. 누가 타고 있을까?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을까? 그 누구는, 혹은 그 아무도는 당신일 수도 있다.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두고 모종의 합의를 했다는 중국의 주장을 필리핀이 또다시 부인했다. 중국은 필리핀 전 정권에 이어 현 정권과도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필리핀이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며 남중국해 ‘신사협정’을 둘러싼 양측 공방이 길어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래플러·AP통신에 따르면,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과 에두아르도 아노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각각 성명을 내 중국의 주장을 두고 사악한 계략 완전히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다고 비판했다. 테오도로 장관은 국익을 훼손하는 어떠한 제안에도 동의하거나 약속한 적 없다고 밝혔으며, 아노 보좌관은 불법으로 조작된 9단선 혹은 10단선을 전제로 한 어떠한 합의도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9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성명은 전날 필리핀 주재 중국대사관이 양국이 남중국해 세컨드 토마스 암초를 관리하기 위한 ‘새 모델’에 합의했다고 밝힌 것에 대한 반발이다.
중국대사관은 그 ‘새 모델’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올해 초 남중국해를 관장하는 필리핀 서부사령부가 (국방장관과 국가안보실을 포함한) 지휘계통의 모든 주요 관리들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반복 확인했다며 장관과 보좌관을 특정했다.
중국의 이러한 주장에는 필리핀 현 정권에서도 남중국해에 관한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의미가 반영됐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 신사협정’을 주장하는 것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필리핀 주재 중국대사관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시절인 2016년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의 세컨드 토마스 암초를 관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2022년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이 이를 부인하며 받아들이지 않자, 중국대사관은 지난 3일 처음으로 그 내용을 공개하며 필리핀을 재차 압박했다.
중국대사관이 낸 성명에 따르면, 양국은 암초 주변에서 소규모 어업은 허용하는 대신 군, 해안경비대, 기타 관용 비행기와 선박과 접근은 제한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합의했다는 것이 중국의 설명이다. 중국대사관은 필리핀이 지난 7년 동안은 이 협정을 존중했으나 이후 자국의 정치적 의제에 따라 협정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전임 두테르테 정권에서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 ‘신사협정’을 맺었는지를 둘러싸고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후 내가 기억하는 건 ‘현상 유지’라는 말뿐이다. 서면합의는 없었다. 만약 그것이 신사협정이었다면 남중국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비밀 합의가 있었다면 이제 파기하겠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지난 3월 기재부에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 이어 국무총리와 국가기관 51곳 기관장의 ‘이임식 및 취임식 비용’도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정보공개 청구는 세금이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주요 국가기관의 이·취임식 비용을 전수 조사, 비교·분석해 봤다.
[주간경향] 지난해 12월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임식이 입길에 올랐다. 행사장 사방에는 10여개의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특히 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추 전 부총리의 당선을 응원하는 뜻으로 읽히는 현수막이 논란을 키웠다. 실제 선거관리위원회가 해당 현수막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런 현수막들은 기관장을 떠나보내는 직원들의 마음을 담았다고 하지만 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임식 비용은 모두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주간경향은 지난 3월 기재부에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 이어 국무총리와 국가기관 51곳 기관장의 ‘이임식 및 취임식 비용’도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 47개(19부·3처·19청·6위원회), 감사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이다. 그 결과 국무총리와 50개 기관장의 이·취임식 비용을 제출받았다. 대체로 5년치 자료를 공개했다. 공공기록물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기관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사항의 예산·회계 자료는 보존기한이 5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검찰청만 유일하게 ‘정보 부존재’, 즉 자료가 없다고 통지했다.
모든 시민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정보공개법 제1조). 정보공개 청구는 세금이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주요 국가기관의 이·취임식 비용을 전수 조사, 비교·분석해 봤다.
■추경호 이임식, 전임보다 29배 많아
기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임식은 정부세종청사 내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와 달리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이임식은 중앙동 4층 로비에서 진행됐다. 넓게 트인 공간이다. 단상에서 이임사를 읽은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임식을 치르고 싶다는 추 전 부총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한다. 기재부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직원들은 계단에 서 있었고, 추 전 부총리가 아래서 직원들을 올려다보며 발언을 했다. 딱딱한 형식을 탈피하려는 시도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논란이 된 건 행사에 동원된 물품이었다. 로비의 주변에는 길게 늘어진 대형 현수막 10여개가 걸렸다. 이들 현수막에는 추 전 부총리의 전신 모습, 기재부 직원들의 메시지 등이 담겼다. ‘추블리,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추블리 FOREVER’, ‘우리의 로또 추경호’, ‘항상 꽃길만 걸으세요’ 등이다. 현수막 맨 아래에는 해당 문구를 만든 국·실의 명칭이 적혔다.
추 전 부총리의 얼굴을 축구선수 몸에 합성해 그린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현수막 속 추 전 부총리는 ‘3선 슬리퍼’를 손에 들고, ‘3선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그가 입은 유니폼에는 ‘달성FC’, ‘3번’(배번)이 새겨졌다. ‘3관왕, MVP 내 다 물끼다(먹을 거다)’라는 글귀도 있다. 추 전 부총리는 당시 대구 달성군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퇴임하고 약 4개월 뒤에 열리는 22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해당 현수막은 추 전 부총리의 3선 성공을 지지하는 취지로 읽혔다(실제 추 부총리는 4·10 총선에서 당선됐다). 이 현수막은 소회를 밝히는 추 전 부총리의 바로 옆에 놓였다.
세종시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현수막을 제작한 기재부 직원이 공무원의 선거 관여를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해당 직원에게 ‘선거법 준수 촉구’ 조치를 내렸다. 기재부 내부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고, 사안이 가볍다는 점을 고려해 낮은 수위의 행정조치를 한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추 전 부총리가 현수막 제작에 관여한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도 추 전 부총리가 지시한 건 아니다라며 다른 현수막도 국·실에서 문구를 제출해 운영지원과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남짓한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에 들어간 비용은 총 495만원으로 파악됐다. 기재부는 현수막 제작에만 230만원을 소요했다. 음향장비와 백드롭(기재부 문양이 들어간 배경막)에 각각 165만원, 100만원을 썼다. 1년 8개월 임기 동안 추 전 부총리의 주요 활동을 담은 영상도 상영됐다.
전임 홍남기 부총리의 2022년 5월 이임식은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진행됐는데 총 17만원이 들었다. 추 전 부총리 이임식 비용의 29분의 1 정도다. 홍 전 부총리는 역대 최장기간(3년 5개월) 부총리를 지냈다. 더 앞서 2018년 12월 김동연 부총리는 이임식 없이 떠났다.
국무총리의 이임식 비용도 지난 10년 동안 100만원을 넘은 적은 없다. 취임식까지 포함해도 그렇다. 2022년 5월 퇴임한 김부겸 총리의 이임식에는 38만2000원이 들었다. 한덕수 현 총리의 취임식(2022년 5월)도 현수막과 선서문 제작 등 92만5000원에 치렀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2022년 11월 이주호 부총리의 취임식에는 12만6000원, 역대 최장수(3년 7개월) 교육부 장관으로 기록된 유은혜 부총리의 2022년 5월 이임식에는 13만6000원이 지출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부 강당을 사용하고 20분 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 일이 없다라며 이·취임식 행사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기관장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고, 해오던 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비용 증가하기도
주간경향이 확보한 국무총리와 50개 기관장(대검찰청은 정보 부존재)의 이·취임식 비용 자료를 종합하면, 대체로 수십만원에서 100만원대 행사를 치른 것으로 분석됐다. 추경호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보다 많은 돈을 들인 사례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5월 문승욱 장관 이임식에 532만8500원을 썼다. 산자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가능한 개방된 공간에서 개최해 행사장비 설치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별도 음향장비 등으로 385만원이 들었다. 현수막 제작 비용도 114만8500만원으로 기존보다 100만원이 더 나갔다. 산자부 관계자는 원래 청사 내 대강당에서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트인 장소를 이용하다 보니, 더 큰 현수막이 필요하게 돼 비용도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산자부는 코로나19 이후 2023년부터는 두 차례 이임식을 각각 58만원에 치렀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에 따라 행사 참석 인원이 제한되면서, 온라인 생중계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 예도 있다. 외교부는 2021년 2월 정의용 장관 취임식에 436만원을 썼는데, 429만원(98.3%)이 온라인 생중계 비용이다. 감사원도 2021년 11월 최재해 원장 취임식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계약을 업체와 맺으면서 352만원을 지불했다.
기재부에 이어 경찰청이 이·취임식에 비교적 높은 경비를 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은 2018년 6월 이철성 청장 이임식에 473만2000원을 지출했다. 현수막과 재직기념패 외에도 영상 제작에도 돈이 들었다. 이 청장의 2016년 8월 취임식에도 총 317만원이 사용됐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2021년 5월 이임식도 228만7000원이 들어 다른 기관보다 다소 높게 나왔다. 감사패 100만원, 현수막(3장) 100만원 등이 쓰였다.
10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이·취임식을 치른 기관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취임식에서 현수막에 5만원을 쓴 게 전부다. 산림청도 2017~2022년 4차례 취임식에서 각 6만6000원(현수막)만 지출했다. 2023년 6월 신설된 재외동포청도 청장 취임식에 꽃다발 값 6만500원을 썼다. 법무부와 국방부 등도 일부 이·취임식을 10만원대에 치르기도 했다.
‘3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이·취임식 비용도 살펴봤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퇴임식에 156만2000원, 후임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식(2023년 12월)에 143만2000원을 썼다. 세부내역은 행사장 비치용 화분, 현수막, 꽃다발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12월 이종석 소장 취임식에 23만원, 그해 11월 유남석 소장 퇴임식에는 78만8500원을 지출했다.
독립 수사기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2021년 1월 현판 제막식(출범식)과 처장 취임식을 동시에 개최하면서 총 750만원의 예산을 썼다.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의 이임식 경비는 현수막과 기념패 등 53만5000원이다.
■별도 규정은 없어
대부분 취임식보다 이임식 비용이 더 들었다. 보통 이임식에서는 기관장에게 감사패(재직기념패)를 전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기념패 외에 24만~30만원 상당의 기념품을 지급하기도 했다.
현수막이나 꽃다발은 이·취임식에 기본으로 등장하는 물품이다. 그러나 기관마다 물품의 종류, 개수, 구매·제작에 든 비용 등은 천차만별이다. 감사패 제작 비용 또한 제각각이다. 행사에 다과를 준비한 기관도 눈에 띄었다. 외교부는 2017년 6월 윤병세 장관 이임식에 다과 비용으로 117만9200원을 썼다. 이후 코로나19 등으로 다과를 뺐다가, 지난 1월 박진 장관의 이임식에 다시 다과(115만3940원)가 등장했다.
이는 기관장의 이·취임식의 형식과 절차, 비용 등을 명시한 법령 등 특별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취임식은 개최하지 않아도, 일부 기관처럼 수만원대에 치러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이·취임식을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관의 관계자는 ‘100만~200만원이 넘는 기관도 있다’고 말하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취임식의 형식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밝히는 기관장의 메시지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기관 관계자들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주로 전례를 참고하거나, 상황이니 시기 등에 맞춰 내용과 물품 등을 조금씩 변경하기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관장의 특별한 지시가 있으면 따르겠지만, 아니면 ‘하던 대로 한다’는 뜻이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2021 정부의전편람>에 국무총리와 행정기관장 이·취임식의 예시가 담겨 있기는 하다. 편람은 정부기관이 공식행사를 진행할 때 참고하는 일종의 매뉴얼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내용도 변한다. 편람을 보면, 행정기관 이·취임식을 두고 각 부처 특색에 맞게 운영한다라며 국민의례, 취임사(이임사), 폐식, 인사교환 등의 간략한 식순이 나열돼 있다. 편람은 일부 기관에서는 꽃다발 증정 등을 식순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지자체장들, 그들만의 ‘호화잔치’
4년마다 선거로 뽑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이·취임식 비용은 어떨까. 사실 1995년 ‘민선 1기’ 때부터 줄곧 논란이 됐다. 특히 취임식에 수많은 외부 인사를 초청하고 공연 등을 곁들이면서, 일회성·선심성·전시성 행사에 수천만원이 넘는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995년 6월 당시 내무부는 취임식을 검소하고 간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지침을 지자체에 내렸고, 이에 일부 당선인들이 지방자치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한 적도 있다.
‘호화 취임식’을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자 알아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큰 비용을 들이는 지자체는 여전히 있다. 주간경향은 2022년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민선 8기’ 일부 지자체장의 이·취임식 비용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았다. 우선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진태 강원도지사 등 3명은 취임식을 하지 않았다. 당시 집중호우로 인한 상황 대처나 일회성 행사 개선 방침에 따른 조치였다.
나머지 14개 시·도는 취임식에 수천만원 이상의 예산을 썼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취임식에는 1억6162만원이 들었다. 현수막·초청장 제작 982만원, 음향·조명·무대 설치 등에 5500만원, TV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송출에 9680만원이 지출됐다. 이어 이철우 경북도지사 6200만원, 김태흠 충남도지사 5236만원, 김관영 전북도지사 4192만원, 오영훈 제주도지사 3860만원, 김영록 전남도지사 3500만원, 강기정 광주시장 3378만원 등이 나갔다. 지자체장의 경우 취임식보다 이임식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임식은 보통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선에서 해결했다.
경기도 내 시·군 중에서 강수현 양주시장, 전진선 양평군수, 조용익 부천시장 등 3명의 취임식에 5000만원 이상이 소요됐다. 남양주·수원·시흥·용인·파주·화성시 등 6곳은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현장점검 등을 이유로 취임식을 생략했다. 다만 수원시는 취임식을 전날 갑자기 취소하면서, 계약을 맺고 설치를 마친 영상·음향·조명 등의 비용 3667만원을 지출했다. 화성시도 미리 계약한 영상·음향장비 비용 700만원을 냈다.
서울시 내 구청장을 살펴보면, 조성명 강남구청장이 5914만원을 써서 가장 높았다(이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자료). 문헌일 구로구청장(4703만원), 박강수 마포구청장(3753만원), 류경기 중랑구청장(3700만원), 이성헌 서대문구청장(3442만원) 등 순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이승로 성북구청장, 유성훈 금천구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4명은 취임식을 하지 않았고,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직원을 대상으로만 취임식(205만원)을 열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취임식보다 세금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곳이 많다라며 주민들의 참여로 통제와 감시 체계를 작동해야 한다. 기관장들이 일회성 행사에 세금을 맘껏 사용하지 못하도록 눈치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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