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공뿐 아니라 말들이 부딪치는 공간…청산 대상 된 ‘쫑’ ‘삑사리’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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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96회 작성일 24-03-15 05:56본문
당구의 원산지는 본래 유럽이지만일본 통해 장비·규칙 유입되면서사용하는 용어도 모두 일본어 많아
과거 건달·불량배 스포츠로 인식일본풍인 용어도 청산 대상 치부하지만 상당수는 뿌리가 영·불어일부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활용
대부분 음운변화 겪으며 국적 상실다양한 용례 통해 이미 ‘국산화’말소리만으로 직관적 의미 전달쫑·삑사리도 금지할 이유가 없다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동네의 건달들, 한쪽 구석의 때에 전 소파에 앉아 짜장면 냄새를 피우는 이들, 몇 시간째의 노름 경기에 오고 가는 때 묻은 돈들, 과거의 풍경은 이랬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창덕궁과 덕수궁에 마련된 공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를 즐기던 고종과 순종의 모습이 있었다. 인스타 팔로워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규격의 설비를 갖춘 밝고 쾌적한 공간에서 조용히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옥돌실’이라고 불렸던 당구장의 모습이다.
시대에 따른 공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이미지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에서 쓰이는 말과 그것의 전파 양상, 나아가 그에 대한 반응과 평가이다. 황실에 설치된 당구대가 일제였듯이 당구 용어도 일본어 일색이었으니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질타와 달리 이곳에서 쓰이던 말이 점차 당구를 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도 퍼지다가 급기야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영화거장의 작품세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그렇다. 이 공간은 공뿐만 아니라 수없는 말들이 부딪치는 공간이다.
■일제 잔재에 대한 ‘겐세이’
시네루 이빠이 주고 히끼로 오마 돌려. 아니면 오시로 나미 따서 하꼬 레지에 쪼당 보구. 보통 사람들에게는 암호처럼 들리겠지만 과거에 당구를 배운 이들에게는 ‘회전 최대로 넣고 끌어서 안쪽으로 돌려, 아니면 얇게 밀어 안으로 돌리기 대회전 쳐서 플러스 투를 노리든지’라는 말보다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일상적인 말이다. 나라 밖에서 문물이 들어올 때는 말까지 묻어오게 마련이다. 당구는 본래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을 통해 장비와 기술이 들어오다보니 당구 용어는 모두 일본어 일색이었다.
맛세이로 원빵꾸 치려고 했는데 키스 나서 뽀로꾸로 들어갔네. 이 또한 ‘찍어치기로 원뱅크 넣어치기를 치려 했는데 원하지 않는 공끼리 부딪쳐 요행으로 성공했네’보다 훨씬 간결하기도 하다. 가끔씩은 영어나 프랑스어가 끼어들기도 했으니 ‘맛세이’는 찍어치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마세(masse)’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공이 아닌 벽부터 치는 ‘뱅크(bank)’, 원하지 않는 공끼리 부딪치는 ‘키스(kiss)’, 요행으로 성공한 ‘플루크(fluke)’는 영어에서 들어와 그대로 쓰이거나 제멋대로 변화해 쓰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당구는 건전한 스포츠가 아닌 건달들의 노름으로 인식되는 마당에 말마저 이러하니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이런 말들의 원산지가 대부분 식민지배 36년의 악몽을 남겨준 일본이니 ‘순화’를 넘어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게다가 각각 ‘비틀다’와 ‘끌다’를 뜻하는 일본어 ‘히네루(ひねる)’와 ‘히꾸(ひく)’가 본래의 어법에도 맞지 않게 제멋대로 쓰이거나 우리말에서의 음운변화가 적용되어 ‘시네리, 히끼’ 등으로 쓰이니 일본어를 아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심지어 영어 ‘플루크’는 ‘뽀록’ 혹은 ‘뽀록꾸’까지 변화를 거듭했으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선과는 별개로 당구장에서의 용어가 일상적인 용법으로 널리 퍼지기도 했다. ‘견제’를 뜻하는 ‘겐세이’는 본래의 뜻 외에 ‘방해하다, 끼어들다’의 뜻으로 당구장 밖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일본어 잔재 청산에 앞장서야 할 것 같은 교육자 출신의 국회의원이 공식석상에서 ‘겐세이 놓다’라는 표현을 써서 뭇매를 맞았다. 이밖에도 정체불명의 당구용어에서 유래한 ‘쫑 나다’나 ‘삑사리’, 그리고 ‘플루크’에서 유래한 듯 보이는 ‘뽀록나다’도 쓰이니 당구 용어에 대한 견제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쫑 나지 않는 ‘쫑’과 ‘삑사리’의 출세
당구 용어가 외국어나 외래어 일색은 아니어서 ‘토종’이나 ‘국산’으로 보이는 용어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공끼리 부딪치는 상황은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이를 가리키는 말인 ‘키스’는 일찌감치 ‘쫑’으로 국산화되었다. 아무래도 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당구장 밖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정이 쫑나다’와 같은 본래 의미를 넘어 ‘인생이 쫑나다’와 같은 확장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공이 빗맞아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삑사리’는 더 극적이다. 공이 빗맞을 때 이 소리가 나니 이 용어는 틀림없이 당구용어로 보이는데 어느 순간 노래나 말소리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를 때의 음 이탈이나 말할 때 성대의 오작동에 의한 높고 거슬리는 소리가 당구에서의 그 소리와 비슷하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나 음 이탈이 일어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이 상황도 ‘삑사리 나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삑사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명장 봉준호 감독의 입과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잡지를 거치면서 ‘예술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괴물> 관련 인터뷰에서 화염병 투척 장면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난 것에 대해 화염병을 던졌는데 삑사리가 나서라고 표현했다. 이 말에 사용된 ‘삑사리’에 감독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은 듯한데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기사 제목을 ‘삑사리의 예술’을 뜻하는 ‘L’art du Piksari’라고 뽑아 ‘삑사리’를 벼락출세시켰다.
천덕꾸러기 당구용어에 불과해보이는 ‘쫑’과 ‘삑사리’의 사례는 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체 모를 당구 용어, 많은 이들이 꺼리는 된소리로 된 단어, 동네 건달들의 노름 용어는 그에 대한 비난과 견제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에 꼭 맞는 새로운 표현의 필요성에 따라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나아가 어찌 보면 거장의 입에는 어울리지 않는 ‘비루하고 속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받게 된다. 이렇듯 말은 단순한 순화나 통제 이상의 대상이다.
■‘쫑’과 ‘키스’의 싸움, 그리고 ‘충돌지리’
당구가 건전 스포츠로 새롭게 변모하면서 그동안 줄기차게 진행되어온 ‘용어 순화’는 꽤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의 잔재였던 ‘우라, 오마, 하꾸’와 그 변이형은 각각 ‘뒤돌리기, 앞돌리기, 옆돌리기’를 거쳐 그것의 준말인 ‘뒤돌, 앞돌, 옆돌’로까지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 당구를 접한 이들은 ‘시네루’나 ‘히끼’ 대신 ‘회전’이나 ‘끌어치기’를 쓴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일본어식 표현이 ‘순화’ 내지는 대치되었다.
그런데 이는 억지로 이루어진 ‘순화’가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다. 일본어에 익숙한 세대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쓴다. 그런데 그 세대가 물러난 뒤 일본어를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세대들은 영어에 더 익숙하니 영어표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무시로 다대’를 치던 이들의 말을 ‘노 잉글리시로 세워치기’로 바꾸게 된다. 이들이 일본어를 안 쓰게 된 것은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이지 일본어가 나쁘거나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다.
일본어가 고유어나 영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쫑’과 ‘삑사리’ 등에 대해서는 묘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쫑’과 ‘삑사리는’ 나쁜 말이니 순화의 대상인가? 많은 이들이 그리 믿고 있는데 왜 나쁜 말이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외국어나 외래어가 아니고 일본어는 더더욱 아니니 청산의 대상은 아니다. 된소리가 포함된 ‘꽃’과 ‘뿌리’가 나쁜 말이 아니니 된소리를 시빗거리로 할 수도 없다. 남은 문제는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나무’나 ‘하늘’을 비롯한 모든 말은 본래 출처가 불분명하다.
새로운 당구 단체가 만들어지고 방송으로 중계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당구 용어 순화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지속돼 ‘쫑’과 ‘삑사리’에 대한 순화를 시도했다. 이 두 단어는 방송에서는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각각 ‘키스’와 ‘큐 미스(cue miss)’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키스는 왠지 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렇다고 고유어지만 아이들이 쓰는 ‘뽀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서인지 지극히 점잖아보이는 단어인 ‘충돌’이 어부지리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삑사리는 여전히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이 시점에서 쫑과 삑사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쫑과 삑사리를 쓰면 안 될 이유는 전혀 없다. 말소리만으로도 느낌이 딱 오니 이보다 더 직관적인 단어도 없다. 쫑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이미 ‘사용 승인’이 난 단어이고 삑사리는 외국의 저명 잡지가 영화기법으로 인정해주었으니 ‘국제 특허’를 받은 단어이기도 하다. ‘충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나 ‘충돌’의 일상적 용법과 충돌되니 쓸 만한 대체재는 아니다. 게다가 ‘큐 미스’는 원산지만 다를 뿐 순화해야 할 외국어 아닌가?
■접두사 ‘K’의 끝오름
이 모든 것이 피해의식 혹은 자기방어나 비하의 결과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일제 강점 기간 36년의 두 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젊은 세대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인 적개심이나 일본산에 대한 무한한 동경 대신 이웃으로서 경쟁하고 협력할 방안을 모색할 때이기도 하다. 영어에 익숙하고 세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은 ‘우리 것’만 좋은 것이고 ‘남의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국내산’이 ‘외국산’보다 질이 떨어진다거나 국내산을 쓰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가슴 설렌 ‘약속’ 지금 어디에…옛날식 다방에선 ‘추억’을 판다
아픈 환자에게 필요한 건…약뿐 아니라 따뜻한 ‘소통의 말’
‘오우바’와 ‘친구’ 손잡고…경계를 넘어 ‘꽃길’로 가자
최근에 우리나라가 프로 당구의 시발점이 되면서 당구 용어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쪼당’으로, 최근에는 ‘플러스 투’로 표현되던 것이 ‘끝오름’으로 대체된 것은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힘 있게 친 공이 회전의 반대 방향으로 긴 쿠션과 짧은 쿠션을 차례로 맞고 다시 긴 쿠션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이리 표현했는데 두 표현 모두 귀에 잘 안 들어온다. 그런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제안된 ‘끝오름’은 상황에도 딱 맞고 뜻도 잘 이해된다. 나쁜 것, 그래서 고칠 것이 있다면 이리 해야 한다.
당구계의 ‘K 열풍’도 주목할 만하다. 두 명씩 편을 갈라 치되 한 이닝에서도 한 사람씩 차례로 치는 복식 경기를 영어로는 스카치 방식이라 부른다. 이와 달리 우리는 한 사람이 한 이닝을 책임지며 경기를 했는데 과거에는 이를 ‘겜뻬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인 접두사 ‘K’가 여기에도 적용돼 이를 ‘케이 더블(K double)’이라 부른다. 국내 리그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도 자신들이 익숙하던 용어 대신 ‘뒤돌, 앞돌, 옆돌’이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쓴다. 자부심에 발을 딛고 세계와 당당히 승부하면 이런 결과가 된다. 담배 연기에 가려진 당구 용어도, 자기비하에 억눌린 우리말도 ‘K 열풍’에 편승해 끝오름을 해야 할 때이다.
과거 건달·불량배 스포츠로 인식일본풍인 용어도 청산 대상 치부하지만 상당수는 뿌리가 영·불어일부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활용
대부분 음운변화 겪으며 국적 상실다양한 용례 통해 이미 ‘국산화’말소리만으로 직관적 의미 전달쫑·삑사리도 금지할 이유가 없다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동네의 건달들, 한쪽 구석의 때에 전 소파에 앉아 짜장면 냄새를 피우는 이들, 몇 시간째의 노름 경기에 오고 가는 때 묻은 돈들, 과거의 풍경은 이랬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창덕궁과 덕수궁에 마련된 공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를 즐기던 고종과 순종의 모습이 있었다. 인스타 팔로워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규격의 설비를 갖춘 밝고 쾌적한 공간에서 조용히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옥돌실’이라고 불렸던 당구장의 모습이다.
시대에 따른 공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이미지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에서 쓰이는 말과 그것의 전파 양상, 나아가 그에 대한 반응과 평가이다. 황실에 설치된 당구대가 일제였듯이 당구 용어도 일본어 일색이었으니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질타와 달리 이곳에서 쓰이던 말이 점차 당구를 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도 퍼지다가 급기야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영화거장의 작품세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그렇다. 이 공간은 공뿐만 아니라 수없는 말들이 부딪치는 공간이다.
■일제 잔재에 대한 ‘겐세이’
시네루 이빠이 주고 히끼로 오마 돌려. 아니면 오시로 나미 따서 하꼬 레지에 쪼당 보구. 보통 사람들에게는 암호처럼 들리겠지만 과거에 당구를 배운 이들에게는 ‘회전 최대로 넣고 끌어서 안쪽으로 돌려, 아니면 얇게 밀어 안으로 돌리기 대회전 쳐서 플러스 투를 노리든지’라는 말보다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일상적인 말이다. 나라 밖에서 문물이 들어올 때는 말까지 묻어오게 마련이다. 당구는 본래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을 통해 장비와 기술이 들어오다보니 당구 용어는 모두 일본어 일색이었다.
맛세이로 원빵꾸 치려고 했는데 키스 나서 뽀로꾸로 들어갔네. 이 또한 ‘찍어치기로 원뱅크 넣어치기를 치려 했는데 원하지 않는 공끼리 부딪쳐 요행으로 성공했네’보다 훨씬 간결하기도 하다. 가끔씩은 영어나 프랑스어가 끼어들기도 했으니 ‘맛세이’는 찍어치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마세(masse)’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공이 아닌 벽부터 치는 ‘뱅크(bank)’, 원하지 않는 공끼리 부딪치는 ‘키스(kiss)’, 요행으로 성공한 ‘플루크(fluke)’는 영어에서 들어와 그대로 쓰이거나 제멋대로 변화해 쓰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당구는 건전한 스포츠가 아닌 건달들의 노름으로 인식되는 마당에 말마저 이러하니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이런 말들의 원산지가 대부분 식민지배 36년의 악몽을 남겨준 일본이니 ‘순화’를 넘어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게다가 각각 ‘비틀다’와 ‘끌다’를 뜻하는 일본어 ‘히네루(ひねる)’와 ‘히꾸(ひく)’가 본래의 어법에도 맞지 않게 제멋대로 쓰이거나 우리말에서의 음운변화가 적용되어 ‘시네리, 히끼’ 등으로 쓰이니 일본어를 아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심지어 영어 ‘플루크’는 ‘뽀록’ 혹은 ‘뽀록꾸’까지 변화를 거듭했으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선과는 별개로 당구장에서의 용어가 일상적인 용법으로 널리 퍼지기도 했다. ‘견제’를 뜻하는 ‘겐세이’는 본래의 뜻 외에 ‘방해하다, 끼어들다’의 뜻으로 당구장 밖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일본어 잔재 청산에 앞장서야 할 것 같은 교육자 출신의 국회의원이 공식석상에서 ‘겐세이 놓다’라는 표현을 써서 뭇매를 맞았다. 이밖에도 정체불명의 당구용어에서 유래한 ‘쫑 나다’나 ‘삑사리’, 그리고 ‘플루크’에서 유래한 듯 보이는 ‘뽀록나다’도 쓰이니 당구 용어에 대한 견제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쫑 나지 않는 ‘쫑’과 ‘삑사리’의 출세
당구 용어가 외국어나 외래어 일색은 아니어서 ‘토종’이나 ‘국산’으로 보이는 용어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공끼리 부딪치는 상황은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이를 가리키는 말인 ‘키스’는 일찌감치 ‘쫑’으로 국산화되었다. 아무래도 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당구장 밖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정이 쫑나다’와 같은 본래 의미를 넘어 ‘인생이 쫑나다’와 같은 확장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공이 빗맞아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삑사리’는 더 극적이다. 공이 빗맞을 때 이 소리가 나니 이 용어는 틀림없이 당구용어로 보이는데 어느 순간 노래나 말소리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를 때의 음 이탈이나 말할 때 성대의 오작동에 의한 높고 거슬리는 소리가 당구에서의 그 소리와 비슷하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나 음 이탈이 일어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이 상황도 ‘삑사리 나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삑사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명장 봉준호 감독의 입과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잡지를 거치면서 ‘예술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괴물> 관련 인터뷰에서 화염병 투척 장면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난 것에 대해 화염병을 던졌는데 삑사리가 나서라고 표현했다. 이 말에 사용된 ‘삑사리’에 감독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은 듯한데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기사 제목을 ‘삑사리의 예술’을 뜻하는 ‘L’art du Piksari’라고 뽑아 ‘삑사리’를 벼락출세시켰다.
천덕꾸러기 당구용어에 불과해보이는 ‘쫑’과 ‘삑사리’의 사례는 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체 모를 당구 용어, 많은 이들이 꺼리는 된소리로 된 단어, 동네 건달들의 노름 용어는 그에 대한 비난과 견제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에 꼭 맞는 새로운 표현의 필요성에 따라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나아가 어찌 보면 거장의 입에는 어울리지 않는 ‘비루하고 속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받게 된다. 이렇듯 말은 단순한 순화나 통제 이상의 대상이다.
■‘쫑’과 ‘키스’의 싸움, 그리고 ‘충돌지리’
당구가 건전 스포츠로 새롭게 변모하면서 그동안 줄기차게 진행되어온 ‘용어 순화’는 꽤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의 잔재였던 ‘우라, 오마, 하꾸’와 그 변이형은 각각 ‘뒤돌리기, 앞돌리기, 옆돌리기’를 거쳐 그것의 준말인 ‘뒤돌, 앞돌, 옆돌’로까지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 당구를 접한 이들은 ‘시네루’나 ‘히끼’ 대신 ‘회전’이나 ‘끌어치기’를 쓴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일본어식 표현이 ‘순화’ 내지는 대치되었다.
그런데 이는 억지로 이루어진 ‘순화’가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다. 일본어에 익숙한 세대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쓴다. 그런데 그 세대가 물러난 뒤 일본어를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세대들은 영어에 더 익숙하니 영어표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무시로 다대’를 치던 이들의 말을 ‘노 잉글리시로 세워치기’로 바꾸게 된다. 이들이 일본어를 안 쓰게 된 것은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이지 일본어가 나쁘거나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다.
일본어가 고유어나 영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쫑’과 ‘삑사리’ 등에 대해서는 묘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쫑’과 ‘삑사리는’ 나쁜 말이니 순화의 대상인가? 많은 이들이 그리 믿고 있는데 왜 나쁜 말이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외국어나 외래어가 아니고 일본어는 더더욱 아니니 청산의 대상은 아니다. 된소리가 포함된 ‘꽃’과 ‘뿌리’가 나쁜 말이 아니니 된소리를 시빗거리로 할 수도 없다. 남은 문제는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나무’나 ‘하늘’을 비롯한 모든 말은 본래 출처가 불분명하다.
새로운 당구 단체가 만들어지고 방송으로 중계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당구 용어 순화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지속돼 ‘쫑’과 ‘삑사리’에 대한 순화를 시도했다. 이 두 단어는 방송에서는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각각 ‘키스’와 ‘큐 미스(cue miss)’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키스는 왠지 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렇다고 고유어지만 아이들이 쓰는 ‘뽀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서인지 지극히 점잖아보이는 단어인 ‘충돌’이 어부지리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삑사리는 여전히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이 시점에서 쫑과 삑사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쫑과 삑사리를 쓰면 안 될 이유는 전혀 없다. 말소리만으로도 느낌이 딱 오니 이보다 더 직관적인 단어도 없다. 쫑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이미 ‘사용 승인’이 난 단어이고 삑사리는 외국의 저명 잡지가 영화기법으로 인정해주었으니 ‘국제 특허’를 받은 단어이기도 하다. ‘충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나 ‘충돌’의 일상적 용법과 충돌되니 쓸 만한 대체재는 아니다. 게다가 ‘큐 미스’는 원산지만 다를 뿐 순화해야 할 외국어 아닌가?
■접두사 ‘K’의 끝오름
이 모든 것이 피해의식 혹은 자기방어나 비하의 결과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일제 강점 기간 36년의 두 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젊은 세대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인 적개심이나 일본산에 대한 무한한 동경 대신 이웃으로서 경쟁하고 협력할 방안을 모색할 때이기도 하다. 영어에 익숙하고 세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은 ‘우리 것’만 좋은 것이고 ‘남의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국내산’이 ‘외국산’보다 질이 떨어진다거나 국내산을 쓰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가슴 설렌 ‘약속’ 지금 어디에…옛날식 다방에선 ‘추억’을 판다
아픈 환자에게 필요한 건…약뿐 아니라 따뜻한 ‘소통의 말’
‘오우바’와 ‘친구’ 손잡고…경계를 넘어 ‘꽃길’로 가자
최근에 우리나라가 프로 당구의 시발점이 되면서 당구 용어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쪼당’으로, 최근에는 ‘플러스 투’로 표현되던 것이 ‘끝오름’으로 대체된 것은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힘 있게 친 공이 회전의 반대 방향으로 긴 쿠션과 짧은 쿠션을 차례로 맞고 다시 긴 쿠션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이리 표현했는데 두 표현 모두 귀에 잘 안 들어온다. 그런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제안된 ‘끝오름’은 상황에도 딱 맞고 뜻도 잘 이해된다. 나쁜 것, 그래서 고칠 것이 있다면 이리 해야 한다.
당구계의 ‘K 열풍’도 주목할 만하다. 두 명씩 편을 갈라 치되 한 이닝에서도 한 사람씩 차례로 치는 복식 경기를 영어로는 스카치 방식이라 부른다. 이와 달리 우리는 한 사람이 한 이닝을 책임지며 경기를 했는데 과거에는 이를 ‘겜뻬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인 접두사 ‘K’가 여기에도 적용돼 이를 ‘케이 더블(K double)’이라 부른다. 국내 리그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도 자신들이 익숙하던 용어 대신 ‘뒤돌, 앞돌, 옆돌’이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쓴다. 자부심에 발을 딛고 세계와 당당히 승부하면 이런 결과가 된다. 담배 연기에 가려진 당구 용어도, 자기비하에 억눌린 우리말도 ‘K 열풍’에 편승해 끝오름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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