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아역 배우에게 촬영장은 왜 그토록 가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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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57회 작성일 24-03-19 04:30본문
위험을 향해 달리다-기억과 대면한 기록들
세라 폴리 지음|이재경 옮김|위즈덤하우스|364쪽|1만8000원
과거는 달라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흐를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할지라도 한 사람의 의식 속에 과거는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 현재의 맥락 속에서 지난 경험과 기억들은 부단히 그 의미를 달리한다. 고통스러워 억눌러왔던 이야기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들여다보는 일은 위험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현재의 삶과 공명하면서 새로운 맥락으로 재배치되기도 한다. 덜 버겁고 짊어지기 쉬운 방향으로 말이다.
국내에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로 이름을 알렸고, <위민 토킹>으로 제95회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캐나다 영화감독 세라 폴리의 에세이집 <위험을 향해 달리다>가 출간됐다. 여섯 편의 에세이를 엮은 이 책은 제목처럼 그의 인생의 가장 위험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겪었던 고통, 미성년기에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 11세 때 맞닥뜨렸던 엄마의 죽음 등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내가 이제껏 피해왔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수많은 밤을 지새우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내게 계속 출몰하고, 부지불식간에 우회로를 택하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고통스럽기에 회피했던 기억들이지만, 저자는 지금, 여기의 삶의 주도권을 단단히 움켜쥔 채 자신의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어간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였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상처 이면의 사회적·문화적 맥락들을 포착해낸다. 상처를 둘러싼 관계들은 다시 설명되고 폭력의 구조는 좀 더 명료해진다. 때론 유사한 경험을 다시 겪고 이를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되기도 한다.
‘미치광이 천재’는 아홉 살의 저자가 미성년에 대한 물리적·정서적 보호장치가 전무했던 영화 현장에서 겪은 신체적·정서적 손상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바론의 대모험>(1989)에 캐스팅된 저자에게 촬영 현장은 공포 그 인스타 팔로우 구매 자체였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동의 인권이 유린된 학대의 현장이었다. 폭발음에 귀가 찢어지는 듯했고 불바다 같은 집중포화 현장을 달려야 했다. 초대형 수조에서 잠수복을 입고 오랜 시간 추위에 시달리거나 크레인에 매달려 추락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저자는 훗날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적 상황의 책임을 부모에게 돌린다. 아빠에게 공포스러운 장면을 그만 찍게 해달라고 했지만 아빠는 번번이 무력했다. 자신의 상처를 스테이지맘(어린 자녀의 연예계 데뷔를 위해 극성을 부리는 부모)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저자는 지인의 딸이 길리엄 감독의 새 영화 <타이드랜드>(2009)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e메일을 쓴다.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어린 배우들의 상황을 고려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길리엄은 상처가 깊었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당시 위험한 장면들은 대역을 썼는데 오히려 저자의 기억이 왜곡된 건 아닌지 묻는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상처에 대한 책임이 길리엄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오랫동안 위험천만한 촬영 환경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부모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백인 남성 감독에게 수없이 많은 비행과 학대의 길을 터준 ‘미치광이 천재’ 신화를 꼽는다.
내가 테리의 책임을 면해준 것은 어릴 때부터 ‘악동 감독’(통제 불가 미치광이 백인 남성 천재)이라는 개념에 현혹된 탓이다. 천재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영화계를 지배해온 신화를 나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계가 특정 남성들의 충동 조절 장애 행동을 천재의 증상으로 해석하는 것을 평생 목격해야 했다.
저자는 일찍부터 자신이 경험한 제작 현장의 부조리한 위계 구조와 폭력성을 바탕으로 창작과 돌봄의 관계, 감독의 비전과 작품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방식, 예술가의 책무에 대한 새로운 규범 등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침묵한 여자’는 캐나다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안 고메시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미투’보다 앞선 2014년, 캐나다에서는 CBC 인기 라디오 진행자였던 고메시가 세 명의 여성에게 성폭행 및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제보자는 더 늘었고 피해 여성들은 그를 고소했다. 같은 피해자였지만 나서지 못했던 저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복원하고 ‘침묵’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로움, 공포, 자괴감, 책임감 등 감정이 매 순간 교차하는 가운데 저자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사법시스템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무력감에 침묵을 결정한다.
저자는 고발을 고민하면서 법원이 ‘피해자답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 분명한 자신의 발언과 행동들을 끊임없이 파고든다. 16세 때 당시 28세였던 고메시에게 폭행 피해를 입은 저자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잘라내고 왜곡해 그와의 만남을 지인들과 농담거리로 쓰곤 했다. 그의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사람 좋게 굴고, 거의 애교를 부리고, 기꺼이 자신을 폄하한다. 저자는 말한다. 고메시와 상호작용할 때의 나는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인지 그의 존재가 내 어른 자아를 앗아간다.
지안 고메시 사건은 무죄로 끝났다. 법원은 고소인들이 피해를 입은 후에도 피고인과 교류했고 이후 그에 대한 행동과 발언이 (피해자다운) 반감의 수준에도 부합하지 않았다며 고소인들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저자는 남들에게는 이 비일관성이 그들이 성폭행 피해자가 아니라는 증거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이 비일관성이야말로 그들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더없이 명백한 증거였다고 말한다.
금수저는 명품백 대신 문화를 과시한다, ‘야망계급론’
화교의 시선으로 본 ‘한국 중식’ 역사
인피제본 등 ‘별별’ 책들의 향연
수년간 이 에세이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는 저자는 두려움, 무력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이것들에 눌려 우리가 감수해온 것은 무엇일까? 마음속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용납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라며 괴로워한다. 그러면서도 피해 여성들과의 연대와 미투 운동이 변화시킨 지형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같이 바꿔나가야 할 현실로 새롭게 재배치한다.
저자는 연약했고 취약했던 어린 시절, 내상이 깊었을 상처들에 용기 있고 세밀하게 파고들어가면서 현재와 과거의 대화 속에서 허황되지 않은 회복의 에너지를 전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들은 다 붙여놓아도 한 인생의 초상이 되지는 못한다. 심지어 스냅사진도 되지 못한다면서도 다만 계속 진화하는 기억과의 관계와 그 관계의 변혁적 힘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세라 폴리 지음|이재경 옮김|위즈덤하우스|364쪽|1만8000원
과거는 달라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흐를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할지라도 한 사람의 의식 속에 과거는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 현재의 맥락 속에서 지난 경험과 기억들은 부단히 그 의미를 달리한다. 고통스러워 억눌러왔던 이야기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들여다보는 일은 위험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현재의 삶과 공명하면서 새로운 맥락으로 재배치되기도 한다. 덜 버겁고 짊어지기 쉬운 방향으로 말이다.
국내에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로 이름을 알렸고, <위민 토킹>으로 제95회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캐나다 영화감독 세라 폴리의 에세이집 <위험을 향해 달리다>가 출간됐다. 여섯 편의 에세이를 엮은 이 책은 제목처럼 그의 인생의 가장 위험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겪었던 고통, 미성년기에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 11세 때 맞닥뜨렸던 엄마의 죽음 등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내가 이제껏 피해왔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수많은 밤을 지새우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내게 계속 출몰하고, 부지불식간에 우회로를 택하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고통스럽기에 회피했던 기억들이지만, 저자는 지금, 여기의 삶의 주도권을 단단히 움켜쥔 채 자신의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어간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였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상처 이면의 사회적·문화적 맥락들을 포착해낸다. 상처를 둘러싼 관계들은 다시 설명되고 폭력의 구조는 좀 더 명료해진다. 때론 유사한 경험을 다시 겪고 이를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되기도 한다.
‘미치광이 천재’는 아홉 살의 저자가 미성년에 대한 물리적·정서적 보호장치가 전무했던 영화 현장에서 겪은 신체적·정서적 손상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바론의 대모험>(1989)에 캐스팅된 저자에게 촬영 현장은 공포 그 인스타 팔로우 구매 자체였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동의 인권이 유린된 학대의 현장이었다. 폭발음에 귀가 찢어지는 듯했고 불바다 같은 집중포화 현장을 달려야 했다. 초대형 수조에서 잠수복을 입고 오랜 시간 추위에 시달리거나 크레인에 매달려 추락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저자는 훗날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적 상황의 책임을 부모에게 돌린다. 아빠에게 공포스러운 장면을 그만 찍게 해달라고 했지만 아빠는 번번이 무력했다. 자신의 상처를 스테이지맘(어린 자녀의 연예계 데뷔를 위해 극성을 부리는 부모)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저자는 지인의 딸이 길리엄 감독의 새 영화 <타이드랜드>(2009)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e메일을 쓴다.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어린 배우들의 상황을 고려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길리엄은 상처가 깊었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당시 위험한 장면들은 대역을 썼는데 오히려 저자의 기억이 왜곡된 건 아닌지 묻는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상처에 대한 책임이 길리엄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오랫동안 위험천만한 촬영 환경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부모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백인 남성 감독에게 수없이 많은 비행과 학대의 길을 터준 ‘미치광이 천재’ 신화를 꼽는다.
내가 테리의 책임을 면해준 것은 어릴 때부터 ‘악동 감독’(통제 불가 미치광이 백인 남성 천재)이라는 개념에 현혹된 탓이다. 천재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영화계를 지배해온 신화를 나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계가 특정 남성들의 충동 조절 장애 행동을 천재의 증상으로 해석하는 것을 평생 목격해야 했다.
저자는 일찍부터 자신이 경험한 제작 현장의 부조리한 위계 구조와 폭력성을 바탕으로 창작과 돌봄의 관계, 감독의 비전과 작품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방식, 예술가의 책무에 대한 새로운 규범 등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침묵한 여자’는 캐나다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안 고메시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미투’보다 앞선 2014년, 캐나다에서는 CBC 인기 라디오 진행자였던 고메시가 세 명의 여성에게 성폭행 및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제보자는 더 늘었고 피해 여성들은 그를 고소했다. 같은 피해자였지만 나서지 못했던 저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복원하고 ‘침묵’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로움, 공포, 자괴감, 책임감 등 감정이 매 순간 교차하는 가운데 저자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사법시스템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무력감에 침묵을 결정한다.
저자는 고발을 고민하면서 법원이 ‘피해자답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 분명한 자신의 발언과 행동들을 끊임없이 파고든다. 16세 때 당시 28세였던 고메시에게 폭행 피해를 입은 저자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잘라내고 왜곡해 그와의 만남을 지인들과 농담거리로 쓰곤 했다. 그의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사람 좋게 굴고, 거의 애교를 부리고, 기꺼이 자신을 폄하한다. 저자는 말한다. 고메시와 상호작용할 때의 나는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인지 그의 존재가 내 어른 자아를 앗아간다.
지안 고메시 사건은 무죄로 끝났다. 법원은 고소인들이 피해를 입은 후에도 피고인과 교류했고 이후 그에 대한 행동과 발언이 (피해자다운) 반감의 수준에도 부합하지 않았다며 고소인들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저자는 남들에게는 이 비일관성이 그들이 성폭행 피해자가 아니라는 증거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이 비일관성이야말로 그들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더없이 명백한 증거였다고 말한다.
금수저는 명품백 대신 문화를 과시한다, ‘야망계급론’
화교의 시선으로 본 ‘한국 중식’ 역사
인피제본 등 ‘별별’ 책들의 향연
수년간 이 에세이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는 저자는 두려움, 무력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이것들에 눌려 우리가 감수해온 것은 무엇일까? 마음속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용납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라며 괴로워한다. 그러면서도 피해 여성들과의 연대와 미투 운동이 변화시킨 지형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같이 바꿔나가야 할 현실로 새롭게 재배치한다.
저자는 연약했고 취약했던 어린 시절, 내상이 깊었을 상처들에 용기 있고 세밀하게 파고들어가면서 현재와 과거의 대화 속에서 허황되지 않은 회복의 에너지를 전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들은 다 붙여놓아도 한 인생의 초상이 되지는 못한다. 심지어 스냅사진도 되지 못한다면서도 다만 계속 진화하는 기억과의 관계와 그 관계의 변혁적 힘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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