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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조국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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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4-03-2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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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조국 앞에 서 있다. 그는 이제 막 정국을 뒤엎을 듯한 기세를 몰고 돌아왔다.
시인 장석주는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고 했다. 대추 안에 태풍 몇개, 천둥 몇개, 벼락 몇개가 있다고 했다. 조국의 귀환도 마찬가지다. 그가 흙먼지를 날리며 돌아오기까지 두 개의 정부, 두 명의 인물, 두 개의 정당이 필요했다.
조국 사태를 일으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무능했을지언정 무도하지는 않았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무능할 뿐 아니라, 무도하기까지 하다. 집권 이유였던 공정을 흉내도 내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조국을 불공정의 감옥에서 해방했다. 윤석열 정부의 불공정 때문에 불려 나온 한동훈은 이재명 공격에 최적화되었을 뿐, 국정을 변화시킬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 자신이 자녀 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불공정 문제를 갖고 있다. 조국이 한동훈에 비해 부족할 게 없다. 한동훈이 뜬다면, 조국은 왜 안 되는가?
약점을 가진 이재명은 효과적인 반윤 공세를 못했다. 윤석열·한동훈 앞에 당당하게 나설 인물이 아쉬웠던 참이다. 조국의 발을 묶어둘 이유가 없다. 남을 희생양 삼은 이재명과 달리 스스로 희생양이 된 서사가 있는 그에 대한 지지자들의 동정심도 있다. 조국이 나선다 해도 단기간 내 창당해서 부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을 좇은 거대 양당이 비례위성정당이라는 정치괴물을 합작함으로써 조국에게 문을 인스타 팔로워 구매 열어주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없었으면 조국의 귀환은 불가능했겠지만, 놀랍게도 모든 일이 다 일어났고, 조국이 돌아올 수 있었다. 조국의 귀환이 반가운 이들은 조국의 정치 역량을 감탄하기에 앞서 조국에게 공간을 내준 현실정치에 감사를 표해야 하고, 조국의 귀환이 불편한 이들은 조국을 탓하기 전에 현실정치를 탓해야 한다. 조국의 귀환은 한국 정치 부재증명이요, 현실정치의 한 증상이다. 조국은 더 많은 조국으로, 더 성난 조국으로, 더 단단해진 조국으로 돌아와 우리 앞에 서 있다. 정치가 자기 숙제를 미루고 덮어둔 결과, 우리는 더 어려워진 숙제를 넘겨받은 것이다.
조국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리고 조국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국은 사적 동기, 즉 개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창당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당의 이름으로 삼고, 자기를 수사한 한동훈에 대한 특검, 한동훈 딸 일기장 수사, 검찰독재 조기종식을 주장했다.
정치 행위를 공적 동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공공선이라는 배는 사적 욕망이라는 엔진 없이 항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 없이 엔진만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조국의 공적 동기는 사적 동기만큼 중요하고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조국의 논리는 선명한 투쟁→정권 조기종식→국리민복이다. 달걀 하나를 사서 닭을 키우고, 닭을 팔아 염소를 사고, 돼지, 소를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연상된다. 물론, 사적 복수가 공공선을 낳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확률 낮은 일에 공적 제도와 자원을 써도 괜찮은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한동훈도 조국처럼 불공정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조국의 불공정이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정권심판에 성공한다 해도 확고한 국정 비전과 정책 대안을 갖춘, 집권 주체가 준비되지 않는 한 정권심판은 단순 복수극으로 끝난다. 적대적 감정을 자극해 묻지마 정권교체한 결과, 2년 만에 심판 대상이 된 윤석열 정부가 잘 말해준다.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몰락은 정권심판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어떤 심판 과정을 거쳤느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조국은 민주당보다 더한 강경 투쟁을 하고, 더 진보적인 과제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진보는 맥락상 사회경제적 과제 해결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 ‘윤석열 정부와 한 치 타협 없는 투쟁’을 강조하는 어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선거 이후, 시민의 삶과 행복을 위한 대화 정치가 아니라, 극한적 대결정치가 펼쳐지리라 짐작된다. 대결정치는 당연히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협치가 아닌, 신구 권력 엘리트들 간의 구원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상호 적대와 혐오의에 기반한 정치적 양극화에 지쳤다. 적의, 그리고 분노에 찬 정의감으로 뭉친 새로운 정치집단이 급격히 성장하는 장면을 보면, 우리의 삶이 계속 표류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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