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점선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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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4-03-28 02:27본문
※뉴스레터 점선면 3월19일자(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단 하나의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 클릭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어서 와, 통일은 처음이지
· 지난 3·1절,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통일을 8차례 언급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주요 연설에서 통일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에요.
· 윤 대통령은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30년간 유지돼 온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손 보겠다고 했습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과 비전이 누락돼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통일관과 통일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어요.
· 통일부는 새로운 통일방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각계각층 국민과 전문가를 만나는 ‘수요포럼’을 열기로 했고요. 통일미래기획위원회 2기를 출범시켰어요.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차차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1. 3·1운동과 통일의 연결 고리
3·1절 기념사는 한·일 관계, 남북관계, 국내외 현안 등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히는 중요한 연설입니다. 정부의 역사관, 현실 진단, 외교 전략 구상도 엿볼 수 있죠.
이번 윤 대통령 기념사를 다시 살펴볼까요. 윤 대통령은 3·1운동의 시작인 기미독립선언의 뿌리가 자유주의라고 해석했습니다. 자유를 고리로 3·1운동을 통일과 연결했어요.
‘자유로운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북한은 여전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가며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다. 이를 위해 국제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이번 기념사에서 통일에 관한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일본은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규정했습니다.
연설문에서 3·1절은 민족 독립의 날이라기보다 자유주의의 날로 읽힙니다. 북한은 자유주의의 적이며, 일본은 자유의 파트너이고요. 북한은 동포로,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자로 보는 시각과는 정반대입니다.
윤 대통령은 기미독립선언서 중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 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 맞춰 가려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자유주의’를 도출해냈는데,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기미독립선언의 뿌리로 자유주의를 언급했는데, 이는 민족자결주의를 왜곡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하며 심각한 오독으로 독립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어요.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도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고 말했어요. 당시 다양한 갈래였던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연설에서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2. 우리 이만 헤어져
이번 기념사는 지난해 말 북한이 사실상 통일 포기를 선언한 데 대한 응답이기도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로 여겨지는 연말 전원회의 연설에서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발언했어요.
이는 남북한 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이야기입니다. 남북한은 그간 서로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여겨왔는데요, 이 개념을 완전히 뒤엎고 두 개의 국가, 그것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한 거예요. 북한은 지난해부터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호칭하며 보여온 ‘국가 대 국가’ 시각을 공식화했습니다.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거듭해 온 만큼, 이 역시 통상적 수위의 발언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이번에는 다릅니다. 유훈정치로 세습을 정당화해 온 북한에서, 선대의 유산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 행보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남한은 바라는 통일상이 다를지라도 동족 관계를 바탕에 두고 통일을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지향을 버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의 ‘2국 체제’ 전환 움직임에 대해 정부가 대처 방안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됐어요. 그러다 이번 3·1절 기념사에 정부가 입장을 내비친 겁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추구할 것이며,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하겠다고요.
남북한은 겪어보지 못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부 문서나 관료의 입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각국 정상이 공개적으로 주적이라는 말을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2년, 자신의 SNS에 주적은 북한이라는 글을 올렸죠.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남한을 두고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며 이를 헌법에 명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 자유민주주의에 자유민주주의 추가요
윤석열 정부가 고치겠다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시했습니다. 이 방안은 3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를 점진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남북한이 적대하고 대립하던 관계를 공존·공영 관계로 바꾸며 평화를 정착시키는 ‘화해·협력 단계’입니다. 그다음은 경제·사회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남북연합 단계’예요. 과도기를 거치며 통합을 위한 여건을 발전시켜 나간 뒤,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으로도 하나의 국가가 되도록 하는 거죠.
김 전 대통령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설에서 통일방안의 기본 철학은 자유민주주의임을 분명히 하며 ‘자유’와 ‘민주’를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이 방안 어디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걸까요?
이 통일방안은 올해 30살을 맞았습니다. 북한의 핵 고도화 등 국내외 정세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원래도 나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누락돼서’ 고쳐야 한다는 발언에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더 강조할지, 구체적인 수정 방향이나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통일부는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방안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고요. ‘자유’ ‘인권’ ‘헌법’ 같은 그럴듯한 단어만 관계자 말 속에서 인스타 팔로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1. 평화가 사라졌다
평화 관련 용어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외교부에서 북핵과 평화체제 문제를 담당해온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외교전략정보본부’로 개편됐습니다.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회의실 ‘평화실’을 6·25 당시 미8군사령관 이름을 딴 ‘밴플리트홀’로 바꾸었고요.
윤석열 대통령도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힘에 의한 평화가 중요하며, 다른 것은 가짜 평화라고 말하죠.
손제민 논설위원은 이를 두고 문제는 그런 평화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같은 이들도 추구한다는 데 있다. 내가 강한 무기를 갖추면, 상대는 더 강한 무기로 응수함으로써 ‘안보 딜레마’라고 부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며 그런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많은 자원을 전쟁 대비에 써야 하고, 그렇게 해도 공멸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고 우려합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비례적 대응전략’을 내세웁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아치겠다는 태도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도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 투쟁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정책을 실시해야 하겠다며 이를 분명히 했어요.
남한까지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남북한의 언어가 비슷해졌다는 느낌까지 받습니다. 북한에게 평화를 해치는 망동은 파멸의 전주곡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신원식 국방부 장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윤석열 대통령)처럼요.
남북 간에는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고유하게 엄중합니다. ‘남북은 동족 관계’라는 전제가 부정당하고 남북합의까지 무효가 됐는데, 남북통신선도 끊긴 상태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북한에는 어떤 도발을 하든 규범과 정신, 합의 내용이 있는 상태에서 후속적으로 수습하는 대화 기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어서 연골 없이 뼈만 계속 마주치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2. 미국과 중국 사이, 한반도 문제 행방은?
미·중 전략경쟁 장기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미·러 갈등 심화 등 국제 질서가 ‘진영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일본과 밀착하는 사이, 북한도 중국·러시아에 다가갔습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어요. 남·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모두 모여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협의하는 일은 당분간 어려워 보입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이 세계 질서를 자유주의로 뭉친 미국 중심의 동맹·협력 국가들과 이 질서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대치로 보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미국이 상대 국가들을 견제하는 도구는 ‘가치와 규범’이고요.
민주주의, 인권, 법치는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합의한 규범으로 쉽게 부정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요.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지만, ‘북한 인권’은 또 다른 맥락을 가집니다. 북한은 인권 문제로 압박하는 방식을 ‘체제를 압살하려는 국제적 모략’으로 간주합니다.
통일연구원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규범을 내세운 대북 압박이 거세질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보편적 규범을 무기로 한 압박은 북한의 통치구조 및 발전 전략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북한은 이를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간주하고 더욱 필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요.
통일연구원은 미중 전략경쟁이 남북 관계를 수단화할 수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집착을 강화하고 한편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동기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자유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의 대결 양상이 격화되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는 뒷전이 될 수 있습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완전히 돌아선 북한이 남한을 거치지 않고 미국, 일본과만 담판을 지을 거란 시나리오도 솔솔 나오고 있어요. 러시아를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고요.
통일연구원은 한국이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북미협상을 우선하고 남북관계를 한 발짝 뒤에서 쫓아가는 구도, 비핵화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북미협상에 맡기는 구도로는 평화프로세스를 온전히 작동시키는 데 한계를 갖는다며 남북, 북미, 남북미가 중심이 되는 협상 구도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힘과 억제력을 통한 평화’ 혹은 ‘한·미·일 공조’만 내세운 채 제대로 된 포괄적 대북 구상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정부가 이번 통일방안에 주체적인 비핵화 전략과 대북 구상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128311;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주의와 통일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정부는 자유주의를 강조한 새로운 통일방안을 수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28311; 북한은 최근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며 기존 합의나 ‘한민족’ 개념을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128311;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장기화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는 사실상 멀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 통일방안 마련을 통해 제대로 된 대북 구상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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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통일은 처음이지
· 지난 3·1절,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통일을 8차례 언급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주요 연설에서 통일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에요.
· 윤 대통령은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30년간 유지돼 온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손 보겠다고 했습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과 비전이 누락돼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통일관과 통일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어요.
· 통일부는 새로운 통일방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각계각층 국민과 전문가를 만나는 ‘수요포럼’을 열기로 했고요. 통일미래기획위원회 2기를 출범시켰어요.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차차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1. 3·1운동과 통일의 연결 고리
3·1절 기념사는 한·일 관계, 남북관계, 국내외 현안 등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히는 중요한 연설입니다. 정부의 역사관, 현실 진단, 외교 전략 구상도 엿볼 수 있죠.
이번 윤 대통령 기념사를 다시 살펴볼까요. 윤 대통령은 3·1운동의 시작인 기미독립선언의 뿌리가 자유주의라고 해석했습니다. 자유를 고리로 3·1운동을 통일과 연결했어요.
‘자유로운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북한은 여전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가며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다. 이를 위해 국제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이번 기념사에서 통일에 관한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일본은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규정했습니다.
연설문에서 3·1절은 민족 독립의 날이라기보다 자유주의의 날로 읽힙니다. 북한은 자유주의의 적이며, 일본은 자유의 파트너이고요. 북한은 동포로,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자로 보는 시각과는 정반대입니다.
윤 대통령은 기미독립선언서 중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 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 맞춰 가려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자유주의’를 도출해냈는데,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기미독립선언의 뿌리로 자유주의를 언급했는데, 이는 민족자결주의를 왜곡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하며 심각한 오독으로 독립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어요.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도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고 말했어요. 당시 다양한 갈래였던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연설에서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2. 우리 이만 헤어져
이번 기념사는 지난해 말 북한이 사실상 통일 포기를 선언한 데 대한 응답이기도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로 여겨지는 연말 전원회의 연설에서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발언했어요.
이는 남북한 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이야기입니다. 남북한은 그간 서로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여겨왔는데요, 이 개념을 완전히 뒤엎고 두 개의 국가, 그것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한 거예요. 북한은 지난해부터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호칭하며 보여온 ‘국가 대 국가’ 시각을 공식화했습니다.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거듭해 온 만큼, 이 역시 통상적 수위의 발언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이번에는 다릅니다. 유훈정치로 세습을 정당화해 온 북한에서, 선대의 유산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 행보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남한은 바라는 통일상이 다를지라도 동족 관계를 바탕에 두고 통일을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지향을 버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의 ‘2국 체제’ 전환 움직임에 대해 정부가 대처 방안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됐어요. 그러다 이번 3·1절 기념사에 정부가 입장을 내비친 겁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추구할 것이며,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하겠다고요.
남북한은 겪어보지 못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부 문서나 관료의 입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각국 정상이 공개적으로 주적이라는 말을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2년, 자신의 SNS에 주적은 북한이라는 글을 올렸죠.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남한을 두고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며 이를 헌법에 명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 자유민주주의에 자유민주주의 추가요
윤석열 정부가 고치겠다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시했습니다. 이 방안은 3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를 점진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남북한이 적대하고 대립하던 관계를 공존·공영 관계로 바꾸며 평화를 정착시키는 ‘화해·협력 단계’입니다. 그다음은 경제·사회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남북연합 단계’예요. 과도기를 거치며 통합을 위한 여건을 발전시켜 나간 뒤,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으로도 하나의 국가가 되도록 하는 거죠.
김 전 대통령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설에서 통일방안의 기본 철학은 자유민주주의임을 분명히 하며 ‘자유’와 ‘민주’를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이 방안 어디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걸까요?
이 통일방안은 올해 30살을 맞았습니다. 북한의 핵 고도화 등 국내외 정세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원래도 나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누락돼서’ 고쳐야 한다는 발언에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더 강조할지, 구체적인 수정 방향이나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통일부는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방안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고요. ‘자유’ ‘인권’ ‘헌법’ 같은 그럴듯한 단어만 관계자 말 속에서 인스타 팔로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1. 평화가 사라졌다
평화 관련 용어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외교부에서 북핵과 평화체제 문제를 담당해온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외교전략정보본부’로 개편됐습니다.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회의실 ‘평화실’을 6·25 당시 미8군사령관 이름을 딴 ‘밴플리트홀’로 바꾸었고요.
윤석열 대통령도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힘에 의한 평화가 중요하며, 다른 것은 가짜 평화라고 말하죠.
손제민 논설위원은 이를 두고 문제는 그런 평화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같은 이들도 추구한다는 데 있다. 내가 강한 무기를 갖추면, 상대는 더 강한 무기로 응수함으로써 ‘안보 딜레마’라고 부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며 그런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많은 자원을 전쟁 대비에 써야 하고, 그렇게 해도 공멸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고 우려합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비례적 대응전략’을 내세웁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아치겠다는 태도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도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 투쟁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정책을 실시해야 하겠다며 이를 분명히 했어요.
남한까지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남북한의 언어가 비슷해졌다는 느낌까지 받습니다. 북한에게 평화를 해치는 망동은 파멸의 전주곡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신원식 국방부 장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윤석열 대통령)처럼요.
남북 간에는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고유하게 엄중합니다. ‘남북은 동족 관계’라는 전제가 부정당하고 남북합의까지 무효가 됐는데, 남북통신선도 끊긴 상태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북한에는 어떤 도발을 하든 규범과 정신, 합의 내용이 있는 상태에서 후속적으로 수습하는 대화 기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어서 연골 없이 뼈만 계속 마주치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2. 미국과 중국 사이, 한반도 문제 행방은?
미·중 전략경쟁 장기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미·러 갈등 심화 등 국제 질서가 ‘진영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일본과 밀착하는 사이, 북한도 중국·러시아에 다가갔습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어요. 남·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모두 모여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협의하는 일은 당분간 어려워 보입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이 세계 질서를 자유주의로 뭉친 미국 중심의 동맹·협력 국가들과 이 질서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대치로 보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미국이 상대 국가들을 견제하는 도구는 ‘가치와 규범’이고요.
민주주의, 인권, 법치는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합의한 규범으로 쉽게 부정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요.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지만, ‘북한 인권’은 또 다른 맥락을 가집니다. 북한은 인권 문제로 압박하는 방식을 ‘체제를 압살하려는 국제적 모략’으로 간주합니다.
통일연구원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규범을 내세운 대북 압박이 거세질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보편적 규범을 무기로 한 압박은 북한의 통치구조 및 발전 전략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북한은 이를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간주하고 더욱 필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요.
통일연구원은 미중 전략경쟁이 남북 관계를 수단화할 수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집착을 강화하고 한편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동기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자유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의 대결 양상이 격화되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는 뒷전이 될 수 있습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완전히 돌아선 북한이 남한을 거치지 않고 미국, 일본과만 담판을 지을 거란 시나리오도 솔솔 나오고 있어요. 러시아를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고요.
통일연구원은 한국이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북미협상을 우선하고 남북관계를 한 발짝 뒤에서 쫓아가는 구도, 비핵화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북미협상에 맡기는 구도로는 평화프로세스를 온전히 작동시키는 데 한계를 갖는다며 남북, 북미, 남북미가 중심이 되는 협상 구도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힘과 억제력을 통한 평화’ 혹은 ‘한·미·일 공조’만 내세운 채 제대로 된 포괄적 대북 구상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정부가 이번 통일방안에 주체적인 비핵화 전략과 대북 구상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128311;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주의와 통일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정부는 자유주의를 강조한 새로운 통일방안을 수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28311; 북한은 최근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며 기존 합의나 ‘한민족’ 개념을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128311;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장기화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는 사실상 멀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 통일방안 마련을 통해 제대로 된 대북 구상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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