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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책과 삶] 아름다운 ‘로봇’이 점령한 섬뜩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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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4-04-0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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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나의 천사
이희주 지음|민음사 |448쪽 |1만5000원
특이점을 맞은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결국에는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SF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다. <나의 천사>에는 인간을 뛰어넘는 로봇, ‘천사’가 등장한다. 이 ‘천사’는 ‘지능’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로 그려진다.
머지않은 미래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면 그건 무력이 아닌 사랑 때문일 거다. 그때의 로봇은 감정이 없는 양철 깡통이 아니라 부드러운 살과 피부,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 것이고, 인간의 복종은 자발적인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것일 테다.
소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로봇 ‘천사’가 일상이 된 세계를 보여준다. 아름다움이 권력이자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 소설 속 세계는 역설적이게도 기괴하고 섬뜩하다. 일례로,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열일곱 소년의 얼굴은 아름답다는 이유로 심폐소생술 연습용 천사 ‘토마’로 제작돼 전 세계에 보급된다. ‘토마’가 첫사랑이었다는 어떤 간호사의 고백은 아무리 입을 맞춰도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며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절규보다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희주 작가는 <환상통> <성소년>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랑의 미추를 파헤치는 관능적인 작품 세계를 다져왔다. <나의 천사>에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거기에 달라붙은 인간의 욕망과 증오, 폭력, 수치 등을 조명하며 아름다움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관해 묻는다.
소설은 주요 등장인물인 유미, 미리내, 환희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부촌인 천상동 아래의 주공아파트 단지에 산다. 빈부 격차는 곧 아름다움의 격차이기도 하다. 천상동은 예쁜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개들도 세련돼 주눅이 든 아이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곳이었다. 또 전학생이 오면 ‘아름답다’와 ‘아니다’로 단박에 계급이 판가름났다. 그러던 어느 날 환희는 천상동이 아닌 주공아파트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자비천사’를 목격했다며 아이들을 부추긴다. 환희의 말을 따라 셋은 그 집을 찾아다니는 지극히 아이다운 모험을 시작한다. 그러나 ‘귀한 아름다움’을 보려 한 아이들의 욕망이 죄가 되었을까. 이후 이들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청이게 된다.
소설은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숭배, 그리고 미·추에 대한 강박적 구분이 취약한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준다. 또 거꾸로 이를 답습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어떻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지도 보여준다. 유미는 성형을 안 한 ‘자연인’이 흠이 되는 시대에 부모님이 자연인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까 두렵다. 한편 유미의 아빠는 유미의 외모를 창피해하며 ‘자연인’의 신념을 지닌 엄마와 자주 다툰다. 아빠는 죽을 만큼 보기 싫어! 저렇게 못생긴 애가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라고 유미가 듣는 곳에서 소리친다. 미리내는 전교에서 유일하게 뚱뚱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다. 수학여행에서 교관은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를 뽑은 후, 다음에는 가장 못생긴 애를 뽑자는 잔인한 제안을 한다. 미리내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떠밀려 뽑혔고 웃음거리가 된다. 반면 환희는 셋 중에서 가장 예쁘장하고, 영악스럽게도 이를 이용할 줄 알았다. 가난한 집에 막내딸로 태어나 얼굴을 파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며 각오를 다지고 자란다. 그러나 점점 자신의 아름다움이 또래에 비해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을 유일하게 예쁘다고 해준 고등학교 미술 선생의 유혹에 넘어간다. 소설은 가상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아름다움에 내재한 잔인한 폭력성에 노출된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성장해 어른이 되면서 부유층의 사치품이었던 ‘천사’는 ‘보급형’이 출시되고 나아가 ‘맞춤형’까지 등장해 사람들의 일상을 점령하게 된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겪으면서 지루했던 삶이 변하는 기적을 경험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천사’로 인해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노동력과 출산율이 감소하는가 하면 천사가 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증오해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면서 인간 고유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천사’를 파괴하려는 세력들도 잇따라 형성된다. 하지만 이들의 천사 ‘러다이트’ 운동은 아름다움의 독재 앞에 번번이 수포가 되고 때로는 아름다움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취약함에 흔들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소년들을 착취해 수많은 ‘천사’를 만들었다는 ‘천사’의 장인 선우판석에 대한 피해자의 폭로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어도 대중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제는 미소년의 시기를 벗어난 피해자의 얼굴이 더는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사’를 배격한다는 시민단체 ‘흑곰회’도 아름다움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젊고 아름답다는 암묵적인 이유로 연고도 없는 미리내를 그들의 조직원으로 받아들인다.
지극히 한국적인 ‘K-아파트’ 탄생기, ‘마포주공아파트’
패전국 일본에 남은 반전 사상가
음모론에 빠진 가족·친구와의 대화 요령, 감정을 보이지 마라
이토록 사람들을 휘어잡는 강력한 아름다움의 힘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그 힘에는 실체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소설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실체는 생각보다 허약하다. 아이들은 ‘아름답다’ ‘아니다’로 쉽게 판별하지만, 이는학습된 것에 가깝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말을 따라 했다. 큰 눈이 아름답다. 긴 다리가 아름답다. 어른들은 개인의 취향에 맞춘 ‘맞춤형 천사’를 비싼 돈을 들여 사들이지만, 소설 속 박사의 이야기처럼 보통의 인간들은 그렇게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을 뿐더러 실은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편 미리내는 아름다움이 절대적 실체라기보다는 ‘기세’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엔 기세가 있다. 그 기세에 한번 휘말리면 사람들은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걸 택하곤 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기보다는 권력, 자본, 성, 윤리, 욕망 등이 뒤엉키면서 그 실체를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천사>는 진·선·미로 일컬어지는 이상적인 가치로서의 ‘아름다움’ 이 아니라 인간의 온갖 것들이 뒤엉킨 뒤틀리고 끈적한 실체로서 우리의 욕망에 단단히 달라붙어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시장 초입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머니와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할머니에게는 아직 정류장까지 오지 못한 세 명의 일행을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하는 미션이 있었고, 버스기사에게는 대부분이 노인인 승객들을 데리고 이 복잡한 시장통을 무사히 벗어나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니 언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머니는 자기 말을 무시하고 자꾸만 문을 닫으려 하는 기사가 야속했고, 버스기사는 다리를 계단에 올린 채 막무가내로 기다려달라 조르는 할머니의 행동에 화가 났다.
‘참전하겠습니까?’ 눈앞에 상태창이 깜빡였다. 지체 없이 ‘YES’ 버튼을 누른 것은 노인을 공경하는 젊은이의 마음보다, ‘저 남자가 여자라고 막 대하네?’ 하는 ‘페미’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버스기사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느냐, 마느냐, 다투는 순간에 내 참전의지는 무엇으로 오해를 받아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 또한 배차 간격이 큰 그 버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버스에 태운 뒤 앞문을 온몸으로 막으며 ‘진상’ 역할을 자청했다. 짜증이 극에 달한 버스기사가 호통을 치고, 타고 있던 승객들마저 조금씩 성화를 낼 때쯤, 양손 가득 짐을 든 할머니의 친구들이 보였다. ‘남자 승객한테도 이렇게 굴었을 거냐’는 말을 간신히 참고, 마음에도 없는 예의를 차리려 하니 해괴한 진행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기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지금 막 등장하고 계십니다!
나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할머니들은 마치 페스티벌에 지각한 헤드 라이너처럼 화려하게 등장했고 그만큼 승객들의 비난도 맹렬하게 쏟아졌다. 할매들! 다음부터는 돈 모아서 택시 타이소! 대중교통이 와 대중교통이고?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무슨 장을 이래 많이 봤능교! 버스 출발이 지연된 시간은 1분 남짓이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나는 할머니들의 짐이 움직이지 않도록 좌석 안쪽에 야무지게 밀어 넣고 조금 기다려줄 수도 있잖아요라는 말로 그들을 방어했다. 젊은이의 마음이나 ‘페미’의 마음도 아닌, 그저 일을 크게 키워버린 자의 미안함으로.
그래도 할머니들은 내 덕분에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다른 승객들에게 나는 괜한 오지랖을 부려 갈 길을 방해하는 맹랑한 여자였지만, 이 할머니들에게 나는 싹싹하고 예의 바른 청년일 수 있었다. 좌석에 앉은 할머니가 나를 쿡 찌르더니 자신의 무릎을 탁탁 쳤다. 여기라도 앉아라. 괜찮다고 정중하게 거절하며 싹싹하고 예의 바른 청년 이미지에 몰입하려는 찰나,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또 다른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근데 가방에 이런 거는 와 달고 다니노? 가방? 내 가방에 뭐가 달렸지? 아름다운 청년으로 존재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백팩.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냉랭한 표정. 모든 것을 조합하느라 판단이 느려진다. 내 가방에 달린 것은 노란 리본 열쇠고리. 그렇다면…. 말문이 막힌 채 얼어붙어 있는데 이어지는 또 다른 할머니의 말이 더 큰 충격을 가한다! 우리는 보수다 보수!
보수 할머니들이 내리고 나는 굳은 상태로 그들이 앉던 자리에 앉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한 기분으로 창밖을 보는데 교차로 곳곳에 죽은 독재 정권을 찬양하는 여당의 현수막과 그 여당을 심판하고 말겠다는 야당의 현수막이 나란히 나부끼고 있었다. 뭘 응시해도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의 끝이 엉덩이를, 허벅지를, 마음을 찌른다. 그 고통으로 싹싹한 청년이고 싶던 마음도, 다소 부실했던 ‘페미’의 마음도, ‘오른쪽’이 ‘옳은 쪽’이라 당연히 여기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음과, 그게 싫어 탈출하고 싶었던 마음도 전부 잊고 읊조려본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가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것 같다. 아프게 느껴지다니. 4월이구나.
남자를 배신한 자, 누구인가
‘혹시나’의 힘
존재와 부재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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