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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전부인 줄 아나” 어느 번역가의 혼잣말···‘딸깍’에 시작된 번역가 분투기[딸깍, 노동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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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4-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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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명씨(44)는 번역에 첫 발을 디딘 2008년의 기계번역을 “그때만 해도 정말 유치원생 수준도 안됐다”고 기억했다. 그가 번역한 책 가 출간된 2023년 5월에도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가 위협을 체감한 건 인공지능(AI)이 급속히 발전한 그 이후부터다.
“바둑에 도입된 AI를 보면서 AI가 사람을 능가해버렸을 때 느끼는 허탈함 같은 게 왔어요. 업계는 전반적으로 AI의 위협을 애써 무시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가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 “노동소득만으로 버티기 힘들 테니 요즘 주식 투자에도 적극적이 됐어요.”
2023년 유튜브에선 ‘우리나라 최고 역사서는 아직 30%밖에 번역되지 않았다’는 쇼츠가 화제를 모았다. 조선시대 행정사무를 기록한 <승정원일기>가 방대한 분량 탓에 지금도 번역 중이라는 내용의 영상이다. 댓글이 4500개가량 달렸고, 조회수는 570만회를 넘겼다.
영상을 만든 한문번역가 류호혁씨(33)는 “많은 분들이 AI로 (번역)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댓글을 달았어요”라고 말했다.
“번역은 기계적 작업이 아니고 당대 저자의 고민과 사회상을 현대 독자에게 전달하는 작업이에요. AI는 과거의 역사적 맥락까지 고민하지 못하죠. 기술에 대한 논의만 있고,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은 없는 상황에서 AI의 의미는 과장되고 번역의 의미는 평가절하되고 있어요.”
AI의 확산 이후 “번역은 끝났다”는 말도 쉽게 나온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는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 1위로 번역사·통역사를 꼽았다. 사법 분야와 기업 통번역일을 하는 프리랜서 현지희씨(33)는 “사법 분야는 그대로인데 기업 일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언어를 다루는 번역가와 통번역 대학원생 21명의 생각을 들었다. 이들은 ‘번역가가 사라진다’는 주장엔 “최종 검수는 결국 사람의 몫” “사람만이 고민해 풀어낼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생각을 보였다. 하지만 “10년 뒤면 절반 정도의 일자리는 위태로울 것 같다”는 위기감도 공유하고 있었다.
대다수 번역가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하며 분투하고 있었다. “내가 ‘AI는 아니다’라고 해도 변화가 안 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영한 번역가 양성애씨(44)가 말했다. “포경 산업이 쇠퇴한 뒤 고래잡이는 석유시추나 어업으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번역가도 새로운 길을 찾을 거예요.”
지난달 27일 찾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의 ‘통번역과 AI’ 수업에선 신조어 ‘힘숨찐’이 예시로 등장했다. 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이라는 뜻의 줄임말로,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숨은 능력자라는 의미다. 빅테크 기업 A사의 번역기는 이 단어를 ‘매우 강력한’(Strong and Strong)으로 해석했다. 대형 스크린에 기술 언어가 하나둘 등장하자 몇몇 학생들은 아리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AI에 컨텍스트(맥락)를 잘 넣어주려 노력해야 돼요.” 네이버 개발자 출신인 최재걸 AI데이터융합학부 교수는 “해석하기 까다로운 단어가 쓰인 여러 맥락을 찾아오라고 AI에 지시하는 게 중요하죠”라고 설명했다. AI가 여러 맥락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면, 정확한 해석에 근접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AI로 인해 발생한 위기를 AI로 극복하기 위해” 이 수업을 맡았다고 했다. “AI 시대 개발자가 코딩 이외 영역으로 확장해야 하듯이, 통번역사도 번역 너머의 길까지 살펴봐야 해요.”
변화는 전문 번역가를 길러내는 대학에서부터 감지된다. 한국외대 ‘통번역과 AI’는 지난해부터 통번역대학원 1학년 필수 과목으로 개설됐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통번역과 인공지능’ 수업을 개설했고, 성균관대 번역·테솔대학원은 언어·AI대학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의 수강생 구성도 달라졌다. “전에는 (번역이) 생계를 위한 것이었고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들어왔다면, 요샌 자녀 다 키우고 자아실현하려는 분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재작년 합격자 7명 중 3명이 50대 이상이었어요.” 번역 입시 강의를 하는 양성애씨가 말했다. “요즘 학생들에게 ‘큰 돈은 못 벌어, 좋으면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죠. (번역이) 그렇게 전도유망한 게 아닌지는 오래됐거든요.”
일감의 형태도 변했다. “(번역 작업 건수가) ‘포스트 에디팅’ 작업 의뢰로 많이 전환됐어요” 프리랜서 번역일도 하는 강경이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예전엔 번역을 통째로 맡기던 것을 올해 들어서는 ‘포스트 에디팅’ 형태로 1차 번역물을 주면서 이것을 다듬는 선에서만 해달라는 식으로 작업 형태가 바뀌었다”고 했다. 업계에선 ‘1차 번역이 된 것을 번역가가 2차 마무리하는 일을 하며 이전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분도 있다’는 소문이 돈다.
번역 업무에서 AI 활용을 요구받는 일도 늘었다. 주로 영한 번역을 하는 인류학 박사과정생 최수진씨(가명)는 “최근에 번역 의뢰를 받았는데, 처음으로 AI로 번역한 대본이랑 요약본을 참고하라고 같이 보냈더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에선 번역을 동반한 법률 검토를 의뢰하는 고객이 “AI를 활용해 검토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AI가 번역을) 너무 잘 하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통번역가인 홍정민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프롬프트를 넣어본 경험을 예로 들었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을 번역할 때 ‘해외의 어떤 작가 스타일대로 해줘’ 그러면 되게 흉내를 잘 내요.”
그는 AI가 내놓는 결과물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AI 번역이 ‘그럴싸하다’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한계로 꼽았다. “결과물은 굉장히 그럴 듯 하거든요. 근데 원문이랑 비교해 보면 꼭 오류가 나요. 완전히 의존하긴 어렵죠. AI가 내놓은 결과물 감수에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고요.” 기술이 발전하면 완벽에 이를 것이라는 신화와 달리, 실제 기술은 늘 완벽하지만은 않다. “학생들한테도 AI 쓰지 말라고는 안 해요. 최소한 (AI) 한 번 돌리고 나서 원문이랑 대조해보라고 하죠.”
변호사 출신 통번역가 박지원씨(34)는 “솔직히 AI가 100% 아닌 건 다들 알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로펌에서 있었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유상증자, 유상감자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런데 감자를 AI가 ‘포테이토’라고 번역한 적이 있어요.”
“법률 관계에서 그런 실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진짜 큰일 나는 건데…. AI를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요?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오류를 보고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는 감을 가지는 건 그래도 인간 번역가죠.”
AI 번역의 한계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지만, 복잡한 심정도 읽혔다. “AI가 주는 결과물을 모범답안처럼 여기기 시작하면 역량 개발이 제한된다고 느껴져요. 의존하다 보니 제가 고민해 좋은 번역문을 생각해내는 노력이 줄더라고요.” 5년차 프리랜서 번역가 김수현씨(33·가명)는 “너무 납기가 빠듯하지만 않으면 ‘기계번역의 도움을 받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고 했다.
영어 번역가 박지민씨(37·가명)는 AI 활용의 ‘딜레마’를 고민했다. “내가 얘(AI)에 의존할수록 AI가 학습되면서 더 똑똑해지는데…. AI를 잘 쓰는 사람이 유리한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AI를 잘 쓰는 사람이라해도 평생 안전하게 일자리를 지킬까요?” 콘텐츠 업계에서 정규직 번역가로 근무 중인 그가 말했다. “어쩌면 중간 수준의 번역가는 많이 사라지고 최상위 레벨 전문가만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번역가와 대학원생들이 공통적으로 내비친 감정은 ‘불안함’이다. 10년 뒤 미래 전망을 물었더니 “어떻게 일자리를 찾는지 저희끼리 말도 많이 나오는 추세” “엄청 잘하는 일부가 (소득을) 대부분 가져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AI 발전) 속도가 워낙에 빨라서요. 제가 졸업할 때쯤에는 또 어떻게 돼 있을지 모르겠어요.” 통번역대학원생 이소연씨(40·가명)는 ‘중간층’을 걱정했다. “어중간한 사람들이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정말 잘하는 사람은 타격이 없지 않을까요.”
번역가 대부분이 유독 불안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분’이다. 프리랜서나 계약직 번역가가 많아 서로 일감이 줄었는지 묻는 게 조심스럽다. “번역일을 원래 많이 하셨던 분이 계신데 실제로 (일이) 많이 줄어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더 여쭤보기가 뭐해서….” 8년 차 프리랜서 번역가 박성희씨(가명)가 말했다. “기업에 소속된 분들도 ‘계약갱신이 가능할지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
영상 콘텐츠 업계의 번역은 원·하청 구조에 가까워 AI발 공포가 더 부각된다. 번역가로 10년 넘게 일한 정현준씨(가명)는 “일감을 받는 하청들은 AI를 써서라도 가격을 맞추려고 한다”고 전했다.
“챗GPT 등장 이후 하청업체 중에서 자체 번역 AI를 개발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글로벌 OTT가 늘어났고 일을 많이 따오려면 빨리, 많이 AI로 번역을 찍어내는 게 유리한 구조죠.”
AI 사용이 늘어나면서 번역업계에선 납기일을 예전보다 당기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AI를 활용하면 번역 속도가 전보다 2~3배 빠를 것이라는 전제로 빠른 마감을 주문하는 것이다. “작은 출판사들은 편집자한테 빨리, 많은 양을 번역하길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어 번역가들이 압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돈다.
기업에 소속된 ‘인하우스’ 정규직들도 AI 도입으로 받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이정현씨(가명)는 “‘그놈의 AI’ ‘AI가 다인 줄 아나’ 혼잣말을 하면서 일을 한 적도 있어요”라고 했다. 이씨는 늘 AI의 번역을 두 번, 세 번 검수한다. 그는 “(의뢰업체는)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되게 잘 나오는 줄 안다”며 “(일을) 천천히 하면, 일을 더 이상 맡기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부 번역가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위기감은 번역가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세간에도 ‘AI로 번역가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체될 것’이라는 관념이 퍼져 있다. AI 등장 이후 ‘번역 일자리 공고가 줄었다’는 연구결과도 소개된다. 번역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일까.
고용노동부의 직종별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보면 ‘작가·통번역가’의 연간 채용인원은 2021년 2283명에서 2023년 2037명으로 줄었다가 2024년 2721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2326명으로 2021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재직 중인 현원은 2021년 상반기 1만7024명에서 지난해 하반기 2만6917명으로 1만명 가까이 늘었다. 다만 작가와 통역가·번역가를 모두 합한 수치라 번역 일자리가 줄었는지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다.
“‘AI가 다 해주는 거 아니냐’고 정말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제 주변은 대부분 게임 번역처럼 기술 번역가라 아직 소득이나 일감 감소를 겪진 않았어요.” 프리랜서 번역가인 김연경씨(36)는 주로 일본 게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 매번 쓰는 기밀 유지 계약서 때문에 게임 번역에선 AI를 사용하는 일이 없다. “정말로 주변에 번역가가 사라질지 고민하는 분들은 없습니다.”
‘기밀 유지’ ‘AI 번역 금지’ 계약서는 일종의 보호막이 됐다. 대형 출판사에서도 계약서에 ‘AI 번역 금지 조항’을 넣는 사례가 있는데, 해당 업체와 주로 일을 하는 번역가들은 일감이 줄어든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한 번역가는 AI 때문에 일감이 준 것인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며 “환율이 너무 올라 출판사가 외국 서적을 번역하는 걸 꺼려 일감이 줄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일상 번역과 ‘전문 번역’을 구분하지 않는 인식 탓에 ‘일자리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지운 통번역사협회장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바뀐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 통번역사가 아니라 일상에서 쓰는 일반적인 번역을 언론에서도 자꾸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전문 통번역사들이 체감하는 일감 감소는 그렇게 크지 않아요. 오히려 AI를 실제 사용해보고 난 뒤에 ‘결국엔 인간이 개입을 해야되는 거구나’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 같아요.
번역가의 일자리가 위협받으면서 지역 문화기획자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등으로 진로를 넓히는 길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최근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채용공고 등을 보면, 대기업의 현지화 전문가 채용공고가 여럿 눈에 띄었다. 현지화는 해당 국가의 문화와 언어에 맞춰 제품과 서비스를 최적화하는 업무다. 언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번역의 대상과 범위를 확장할 수 있기에 번역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직무로 꼽힌다.
비관적 전망 속에서도 번역가들의 고민은 소득이나 영역 확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AI 시대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도 이어지고 있다. 번역가들은 “오히려 인간이 AI를 활용하면서 좋은 번역의 기준이 더 높아질 것”이라거나 “AI가 등장하면서 좋은 번역에 대한 고민이 더 첨예해졌다”고 했다. AI를 통한 보완과 경쟁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박성희씨는 “어떤 부분에서 인간 번역가가 필요했는지, 왜 사람을 써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어요”라고 말했다.
반면 좋은 번역과 AI의 공존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한문번역가 류호혁씨는 번역이란 인간이 책임을 지고 수행하는 작업이며, 이를 대신하는 기술을 다루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견해를 풀어놨다. 그는 “때로는 비효율적인 (번역) 작업을 위해 기꺼이 고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 번역가 홀로 고민하는 시간과 번역가들 사이의 숙의가 사라지면 좋은 번역 또한 존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건 아마 지구상에서 ‘나밖에 못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가끔, 아주 가끔 들어요.” 통번역대학원생 다나카씨(가명)는 AI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느끼지만, 번역가로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성취감에 여전히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생각할 때 ‘좋은 번역’은 “‘내가 스스로 해냈다’고 생각할 때”가 찾아오게 만드는 번역이다.
금융당국이 이르면 7월부터 사실상 동일한 기업으로 볼 수 있는 계열사의 중복 상장 여부를 엄격히 심사한다. 자회사 상장 전에 모회사가 기존 주주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절차도 명문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주들 사이에 논란이 커진 자회사의 중복상장 시도에 ‘현미경 심사’ 방침을 꺼낸 것이다.
이를 두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축으로 지목돼 온 중복상장을 금지해 소수 주주의 권익 침해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과 기업의 자금 조달이 막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맞부딪힌다. 금융당국은 중복상장 관련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도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는 16일 금융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에서 중복상장 제도 개선의 구체적인 심사 기준과 적용 범위안을 발표했다. 금융위가 지난달 ‘중복상장 원칙 금지·예외허용’ 기조를 발표한 이후 나온 후속 조치다.
우선, 상장 예비 심사에 적용되는 질적 심사 기준 및 상장세칙에 ‘중복상장 특례’를 마련해 적용 대상과 기준을 규정하기로 했다. 특히 ‘경제적 동일체’로 인식되는 종속회사를 별도 상장하는 경우 중복상장 심사를 받도록 할 방침이다. 연결재무제표의 연결 대상 종속회사이거나, 동일 기업집단의 계열회사로 수직적 지배관계인 경우가 해당된다.
물적·인적 분할 자회사 상장뿐 아니라 설립 또는 인수한 자회사 상장도 심사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심사 기준은 크게 영업 독립성과 경영 독립성, 투자자 보호로 나뉘며 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할 수 없게 된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투자자 보호의 경우 모회사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해 상장 배경이나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의 불가피성 등 상장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일반 주주 등의 동의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자본시장에서 중복상장은 지배주주가 추가 출자 없이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배주주는 지배력을 유지하며 기업집단을 확장하지만 모회사 일반 주주는 자회사 상장으로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IBK투자증권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18.43%로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날 발제를 맡은 나현승 고려대 교수는 모회사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이 중복상장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 교수가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중복상장 사례를 실증분석한 자료를 보면, 자회사의 기업공개(IPO) 후 6개월 뒤 모회사의 평균 주가는 10.81% 하락했다. 상장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률이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날 자리에선 중복상장에 따른 일반 주주들의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내놨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중복상장은 일반 주주의 이익을 구조적으로 희생시키는 메커니즘”이라며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반드시 모회사 일반 주주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규 금지뿐 아니라 기존 중복상장 해소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중복상장 여부를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 기업 분할, 상장과 상장 이후 관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점별로 기업의 설명 책임을 부여해 시장의 자율적 교정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벤처투자 회수 수단 중 IPO가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복상장 규제는 벤처투자 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저해한다”며 예외 기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이날 나온 의견을 반영해 오는 6월까지 개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7월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세부적인 기준과 절차에 관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며 “제도 시행 이후에는 모범사례를 통한 지침을 지속 보완해 기준의 구체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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