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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일상과 호사]디올, 매혹하다…성취를 입는다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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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4-04-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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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의 남편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다.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동안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해리스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하루하루 밝고 명랑하게 견디고 있었다. 어느 날 고용주 안주인의 옷장 안에서 눈에 들어온 드레스 한 벌이 해리스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아름답고 풍성한 디올 드레스였다. 해리스는 한눈에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디올 드레스가 해리스의 꿈이 된 것도 그날부터였다. 해리스는 꿈을 꿈으로 두는 사람도 아니었다. 행동했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다. 파리에서는 온갖 어려움과 수모와 오해를 겪었다. 하지만 특유의 낙천성과 긍정으로 주변을 매료시키고 감동시키며 마법 같은 순간을 엮어냈다. 마법 같은 이야기. 2022년 11월에 개봉했고 지금은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의 줄거리다.
디올은 유난히 이런 드라마에 어울리는 브랜드다. 크리스챤 디올은 시작부터 혁명이었는데, 이 얘기를 하자면 역시 전설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여성의 몸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혁신가의 이름이었다.
코르셋은 16세기부터 약 400년간 여성의 허리를 13인치에 고정하고 싶어했던 폭력이었다. 허리를 조이다 못해 갈비뼈가 부러져 폐나 심장을 압박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귀족 집안에 파티가 열릴 땐 코르셋의 압박을 견디다 기절한 여성들을 위한 기절방이 따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기묘하기까지 한 아름다움과 고통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곡선·우아함 방점 찍은 ‘해방감의 상징’퍼스트레이디 패션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김건희 파우치 논란으로 한국정치 뇌관 ‘오명’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던 전설의 디자이너가 샤넬이었다. 샤넬은 직선과 편안함으로 전무후무한 럭셔리를 구현했던 디자이너였다. 샤넬의 옷은 허리를 조이고 가슴과 엉덩이를 풍만하게 강조하는 식이 아니었다. 직선으로 떨어지면서 편하고 심플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땅에 끌릴 정도였던 치마도 과감하게 잘라냈다. 무릎 아랫부분 정도에서 잘라 여성의 편안한 움직임을 응원했다. 디자인의 힘, 과감한 혁명, 오래된 여성성의 속 시원한 해방이었다.
디올의 시대는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찾아왔다. 남자들이 전장으로 떠난 후 공장을 돌렸던 건 도시에 남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공장의 복식은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질기고 실용적이어야 했다. 여성성이 자리 잡을 틈이 없었던 셈이다. 전쟁이 끝난 후, 디올은 전통적인 여성 복식의 아름다움을 다분히 건축적으로 접근해 강조하는 옷들을 선보였다. 허리를 조이고 가슴과 엉덩이를 풍만하게 강조하는 디자인. 곡선과 우아함에 방점을 찍는 옷들이었다. 크리스챤 디올은 이렇게 말했다.
드레스란 여성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한 운명으로 지어진 단기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디올의 첫 번째 컬렉션은 1947년이었다. 과연 전통적인 의미의 여성성을 재건축하는 듯한 라인과 디자인의 다양한 옷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하퍼스 바자 편집장이었던 카멜 스노가 정말이지 새로운 룩! (It’s such a new look)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디올의 당시 스타일을 ‘뉴 룩’이라 통칭하기도 했다. 디올은 그 새로움과 우아함으로 크게 성장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디올이 1951년 프랑스 대미 수출액의 75%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에서 해리스가 파리로 향했던 시점도 그즈음이었다. 남편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과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해리스의 일상에서, 고용주가 애지중지하는 디올 드레스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잊고 지내던 꿈이자 자아의 회복이었던 셈이다. 누군가에게 옷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자아를 해방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누군가에겐 부질없는 사치일 수 있어도, 다른 누군가에겐 성취이자 회복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성복의 테마와 흐름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핵심은 해방이었다. 디올은 단조롭고 실용적이기만 했던 당시의 무드를 전복했다. 전통적인 여성복의 우아한 볼륨을 재창조했다. 그래서였을까? 디올은 유난히 퍼스트레이디들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008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결혼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패션모델, 카를라 브루니는 같은 해 영국 방문 때 입었던 디올 드레스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카를라 브루니가 디올에 약 100만파운드에 달하는 광고 효과를 가져다줬다는 보도를 했다. 아울러 사르코지와 절친한 사이인 LVMH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직접 구입한 것인지, 디올의 선물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됐다. 디올 측은 선물 여부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엘리제궁도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말 미국은 전직 퍼스트레이디의 디올 코트로 시끄러웠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로절린 카터 여사의 장례식에 디올이 만든 풍성한 뉘앙스의 회색 트위드 코트를 입고 참석한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복장 때문이었다. 함께 입장했던 힐러리 클린턴, 로라 부시, 미셸 오바마의 복장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른 복장이었다. 장례식의 예의와 복식에서 어긋난 것은 물론 공식석상에 서는 의미 자체보다 개인의 스타일을 앞세웠다는 점에서도 비난이 들끓었다.
이렇듯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그 자체로 비즈니스이자 메시지다.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김건희 여사의 디올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화제였다. 2022년 5월에는 당시 143만원 정도에 판매하던 ‘워크 앤 디올 스니커즈’를 신고 인스타 팔로우 구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찍은 사진들이 보도됐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장에서 사전투표를 하던 당시의 블라우스 역시 175만원 상당의 디올 제품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약 300만원 상당의 레이디 디올 파우치가 재미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최재영 목사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디올은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상징적인 실루엣이 있죠. 너무 드러나지도 너무 안 보이지도 않는 균형이랄까요. 게다가 최근 디올을 입는 사람이 많이 늘었어요. 블랙핑크 지수가 앰배서더로 활약하면서 브랜드 파워가 많이 올라갔다고도 들었고요.
익명을 요구한 패션 에디터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2023년, 디올의 한국 매출은 1조원을 돌파했다. 북한에서도 이런 흐름을 알고 있는 걸까? 지난가을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들고 있던 레이디 디올 라지 백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패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에 대한 집요한 추구와 전복의 역사일 것이다. 하지만 디올이 건축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로 머무르기만 하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패션의 운명일까? 해리스에겐 꿈이었지만 2024년 4월 한국 정치 지형도에선 뇌관이 되었다. 사치와 비난, 정치와 비즈니스 사이. 대통령실은 조용하고 논란만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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