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30년 지나도 사랑받는 ‘엠.버터플라이’와 ‘헤드윅’···얽히고설킨 차별, 지금도 유효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4-04-17 07:39본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쓴 <엠.버터플라이>는 1988년 초연한 연극이다. 1960년대 중국 베이징에 근무하던 프랑스 외교관과 경극 배우 출신 중국인 연인의 이야기에 모티브를 얻어 창작됐다. 1983년 프랑스 외교관은 중국 연인에게 국가 기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됐다. 외교관과 연인 모두 남성이었다. 외교관은 연인이 여성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희곡 <엠.버터플라이>는 1993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제레미 아이언스·존 론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존 카메론 미첼이 극작·주연을 맡고 스티븐 트래스크가 작사·작곡한 뮤지컬 <헤드윅>은 1994년 초연했다. 미첼이 미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 특히 베를린에 거주한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1988년 동독 소년 한셀이 헤드윅으로 개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록밴드를 만들고 관객에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다는 내용이다. 미첼은 2001년 이 작품을 동명 영화로 만들어 연출·주연을 겸했다.
초연 30년이 넘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2012년 한국 초연한 <엠.버터플라이>는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5월 12일까지 다섯 번째 공연중이다. 2005년 한국 초연한 <헤드윅>은 6월 2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14번째 시즌을 선보인다.
시간이 흘러도 이 작품들이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들의 장점 중 하나는 날로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차별의 양상을 선구적으로 묘사했다는 데 있다. 학계에선 이 같은 양상을 ‘교차성’ 개념으로 파악한다. 미국의 법학자 킴벌리 크랜쇼는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의 특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1989년 ‘교차성’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같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도 흑인과 백인이 겪는 차별은 다르다. 흑인 비장애 남성은 백인 장애 여성보다 낮은 교육과 소득 수준을 보일 수 있다. 장애, 성소수자, 계급 등이 엮이면 더욱 복잡해진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서로 교차하면서 일어난다는 것이 교차성 개념의 핵심이다. 한국의 여성학자들도 교차성 페미니즘을 주요하게 다뤄왔으며,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터프’가 등장한 2010년대 후반부터는 그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엠.버터플라이>의 등장인물들은 문제적이다. 프랑스 외교관 르네는 오페라 <나비부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오페라 속 게이샤 초초상처럼 서양 남성에게 헌신적인 동양 여성을 갈망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여자를 원한다. 르네는 경극 배우 송에게서 그런 여성의 모습을 찾는다. 생물학적 남성인 송은 르네의 환상을 이용해 그를 속이고 기밀 정보를 빼낸다. 송은 남자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겉보기엔 공고했던 서양과 동양,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송의 계략과 함께 내부로부터 역전된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혐오,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주제들이 정교하게 엮인다. 무대 위쪽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흐릿한 거울은 르네의 어리석은 행동과 내면을 비추는 듯하다.
헤드윅은 차별과 학대의 피해자다. 통일 전 동독에서 태어난 소년 한셀은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 암울한 삶을 탈출하기 위해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미군 루터의 결혼 제의를 받아들이지만, 성전환 수술에 실패해 ‘정체불명의 일 인치 살덩이’를 갖고 살아간다. 헤드윅은 미국으로 건너와 미군 루터에게 버림받고 음악으로 새출발을 다짐한다. 음악가 생활도 우여곡절이다. 헤드윅에게 음악을 배운 소년 토미는 곡을 가로채 록스타가 된다. 헤드윅은 또한 학대 가해자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난민 출신 이츠학은 드랙퀸이었다. 헤드윅은 인종청소 당할 위기의 이츠학을 구해 미국으로 함께 가지만, 그 대가로 다시는 가발을 쓰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츠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 채, 헤드윅의 남편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헤드윅은 반발하는 이츠학의 여권을 찢어버리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 배우가 헤드윅, 여성 배우가 이츠학 배역을 맡아왔다는 점도 <헤드윅>의 젠더 역할 수행을 복잡하게 한다.
데이비드 헨리 황은 한국 관객에게 보내온 글에서 연극이 초연된 1988년 이후 동서양의 관계는 변화했고 젠더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발전했다며 <엠.버터플라이>는 최근 우리가 교차성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예견했다고 적었다. 존 카메론 미첼은 2018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우리 안에는 남성, 여성의 에너지가 모두 있다. 그 에너지를 연마하지 않으면 벽 속의 쥐처럼 죽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 에너지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 카메론 미첼이 극작·주연을 맡고 스티븐 트래스크가 작사·작곡한 뮤지컬 <헤드윅>은 1994년 초연했다. 미첼이 미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 특히 베를린에 거주한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1988년 동독 소년 한셀이 헤드윅으로 개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록밴드를 만들고 관객에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다는 내용이다. 미첼은 2001년 이 작품을 동명 영화로 만들어 연출·주연을 겸했다.
초연 30년이 넘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2012년 한국 초연한 <엠.버터플라이>는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5월 12일까지 다섯 번째 공연중이다. 2005년 한국 초연한 <헤드윅>은 6월 2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14번째 시즌을 선보인다.
시간이 흘러도 이 작품들이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들의 장점 중 하나는 날로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차별의 양상을 선구적으로 묘사했다는 데 있다. 학계에선 이 같은 양상을 ‘교차성’ 개념으로 파악한다. 미국의 법학자 킴벌리 크랜쇼는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의 특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1989년 ‘교차성’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같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도 흑인과 백인이 겪는 차별은 다르다. 흑인 비장애 남성은 백인 장애 여성보다 낮은 교육과 소득 수준을 보일 수 있다. 장애, 성소수자, 계급 등이 엮이면 더욱 복잡해진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서로 교차하면서 일어난다는 것이 교차성 개념의 핵심이다. 한국의 여성학자들도 교차성 페미니즘을 주요하게 다뤄왔으며,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터프’가 등장한 2010년대 후반부터는 그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엠.버터플라이>의 등장인물들은 문제적이다. 프랑스 외교관 르네는 오페라 <나비부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오페라 속 게이샤 초초상처럼 서양 남성에게 헌신적인 동양 여성을 갈망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여자를 원한다. 르네는 경극 배우 송에게서 그런 여성의 모습을 찾는다. 생물학적 남성인 송은 르네의 환상을 이용해 그를 속이고 기밀 정보를 빼낸다. 송은 남자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겉보기엔 공고했던 서양과 동양,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송의 계략과 함께 내부로부터 역전된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혐오,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주제들이 정교하게 엮인다. 무대 위쪽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흐릿한 거울은 르네의 어리석은 행동과 내면을 비추는 듯하다.
헤드윅은 차별과 학대의 피해자다. 통일 전 동독에서 태어난 소년 한셀은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 암울한 삶을 탈출하기 위해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미군 루터의 결혼 제의를 받아들이지만, 성전환 수술에 실패해 ‘정체불명의 일 인치 살덩이’를 갖고 살아간다. 헤드윅은 미국으로 건너와 미군 루터에게 버림받고 음악으로 새출발을 다짐한다. 음악가 생활도 우여곡절이다. 헤드윅에게 음악을 배운 소년 토미는 곡을 가로채 록스타가 된다. 헤드윅은 또한 학대 가해자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난민 출신 이츠학은 드랙퀸이었다. 헤드윅은 인종청소 당할 위기의 이츠학을 구해 미국으로 함께 가지만, 그 대가로 다시는 가발을 쓰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츠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 채, 헤드윅의 남편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헤드윅은 반발하는 이츠학의 여권을 찢어버리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 배우가 헤드윅, 여성 배우가 이츠학 배역을 맡아왔다는 점도 <헤드윅>의 젠더 역할 수행을 복잡하게 한다.
데이비드 헨리 황은 한국 관객에게 보내온 글에서 연극이 초연된 1988년 이후 동서양의 관계는 변화했고 젠더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발전했다며 <엠.버터플라이>는 최근 우리가 교차성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예견했다고 적었다. 존 카메론 미첼은 2018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우리 안에는 남성, 여성의 에너지가 모두 있다. 그 에너지를 연마하지 않으면 벽 속의 쥐처럼 죽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 에너지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