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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변부에 있던 이들, 세계 미술무대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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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4-04-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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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예술계의 중심에 세상의 가장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이 섰다.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이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잊혀지고 소외되어 온 선주민, 이주민, 퀴어, 여성들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예술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전시 주제를 ‘어디든 외국인이 있다(Stranieri Ovunque-Foreigners Everywhere)’로 내세웠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17일 프리뷰에서 확인한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적어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만큼은 제1세계 백인들은 관람객의 위치로 완전히 밀려났다.
■선주민, 퀴어, 이민자 예술의 중심에 서다
비엔날레 전시장 중앙의 파빌리온 파사드 외벽을 화려하게 채운 브라질과 페루의 후니쿠인족 예술가 그룹인 ‘후니쿠인 예술가 운동(MAKHU)’의 벽화가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며 본전시가 시작된다. 원색과 형광색을 과감히 사용하며 얼굴과 온몸에 전통 문양을 새긴 후니쿠인족과 물고기, 새 등 동물로 외벽을 빼곡히 채워넣었다.
MAKHU의 벽화는 시작일 뿐이다. 본전시엔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선주민 예술이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 이를 파괴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조롱,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펼쳐보인다. 현대 서구 미술이 아프리카,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예술을 동경하며 낭만적으로 대상화해 ‘원시주의’라고 부른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이들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중앙 파빌리온엔 페드로자가 예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꽉꽉 채워졌다. MAKHU의 벽화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클레어 퐁텐의 ‘어디든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외국인이 있다’가 네온사인으로 빛난다. 이어 이집트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닐 얄터의 설치작업 ‘망명은 힘든 일이다(Exile is Hard Job)’가 거대한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민, 망명자의 이미지가 사방벽을 가득 채우고 ‘망명은 힘든 일이다’라는 메시지가 각국의 언어로 쓰였다. 이민자 개개인이 겪어온 고난과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도 함께 볼 수 있다.
퀴어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전시의 주요 부분을 이룬다. 성소수자 혐오를 비판하는 동시에 성소수자들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낸 도발적이고 강렬한 작품들이 많다. 미국의 루이스 프란티노는 퀴어의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을 다룬 신작들을 선보인다. 남성 신체와 친밀성을 그린 작품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이러한 이미지가 공적 공간에서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비꼰다.
19세기 조선소 자리인 아르세날레 본전시장에선 나이지리아 출신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Ⅱ’을 시작으로 본전시의 주제의식을 좀더 다채롭고 풍부한 작품들로 펼쳐보인다. 멕시코 흑인들의 역사와 목소리를 다뤄 온 멕시코 작가 에디 로드리게스 로페스가 면화 플랜테이션 농업의 노예노동 착취, 식민지배 등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며 주체로 선 흑인의 모습을 당당하게 그려낸다면, 뉴질랜드 마오리 여성 4명이 협업한 ‘마타호 콜렉티브(Mataaho Collective)’는 마오리 여성의 전통적 직조방식을 대형 설치작품으로 구현해 전통성과 현대성을 모두 구현해냈다.
■비엔날레가 ‘특별히 모신’ 김윤신·이강승
332명(팀)이 초대된 본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김윤신, 이강승, 작고한 이쾌대, 장우성의 작품이 소개됐다. 페드로자는 김윤신과 이강승에게 전시공간의 중앙무대를 내어주었다. ‘여성 1세대 조각가’로 4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해온 김윤신은 나무조각 4점, 돌조각 4점을 선보였다. 김윤신을 눈여겨 보았던 페드로자가 지난해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김윤신의 개인전을 보기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아 8점을 점찍어 요청했다. 4점의 나무조각은 나무껍질을 남겨둔 채 나무의 속살을 드러내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김윤신 작품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멕시코의 오닉스와 브라질의 디아스프로 광석으로 만든 돌조각은 거대한 원석을 전기톱으로 깎아만들어 나무조각과는 또다른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전시장을 찾은 김윤신은 이런 순간을 상상하지 못했다. 작업에만 빠져 살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세계와 한국의 숨겨지거나 삭제된 퀴어의 삶을 발굴하고 이어붙이는 작업을 해온 이강승은 베니스비엔날레를 위해 신작을 선보였다. 수채화와 흑연드로잉, 자수, 수집물 등을 중첩해 배치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강승은 ‘어디든 외국인은 있다’는 개인적으로도 저와 밀접히 연결되는 주제였다. 저도 퀴어이고, 한국인인 동시에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주민이라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다양한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걸 느껴보자는 제안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자기가 갖고 태어난 정체성과 완벽히 일치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강승은 전시를 보는 사람 가운데 본전시에 소개된 원주민,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가 서구 중심의 지식에 대해 돌아보고, 많은 배움의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선주민 작가에게 내준 미국관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는 개별 국가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체로키족 선주민 예술가인 제프리 깁슨에게 미국관을 내주었다. 미국관이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선주민 작가의 전시를 단독으로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관은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채워졌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We want to be free)’ 등이 새겨진 실과 직물로 만들어진 대형 조각 2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화려한 색상의 실과 비즈로 표현한 회화와 조각이 선주민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면, 인종차별, 동성애 차별 등을 비판하는 문구들이 새겨져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밖에도 호주관, 스페인관, 캐나다관 등 다수의 국가관이 선주민,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한국관은 보이지 않는 전시로 승부한다.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는 냄새가 전시의 주인공이다. 사전에 수집한 600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기억과 역사를 담은 향 16가지를 만들었고 전시장 기둥 위쪽에 조그맣고 하얀 볼 형태로 설치해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전시장 곳곳에서 밥 짓는 냄새, 목욕탕 냄새, 안개 냄새, 장독대 냄새 등을 맡을 수 있다. 16개의 향을 혼합한 향 ‘오도라마 시티’는 구정아 작가의 2017년작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우스를 대형으로 제작한 조형물이 내뿜는 콧김으로 맡을 수 있다. 시각적 강렬함이나 직접적 메시지는 없지만 잔향처럼 오래 지속되는 기억을 노린 작품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7일(현지시간)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오는 11월 24일까지 열린다.
5m 높이의 전시관 사방의 검은 벽이 하얀 분필로 눌러쓴 글씨로 가득 채워졌다. 어두운 전시관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하얀색 글씨들이 규모와 양에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빽빽한 글씨들의 정체는 ‘쿨린(Kullin)’ ‘쿰키(Kumki)’와 같은 이름들이다. 호주의 원주민 예술가 아키 무어(Archie Moore)는 호주 원주민의 6만5000년이 넘는 가계도를 손으로 그려넣었다. 군데 군데 블랙홀처럼 글씨가 지워진 구멍들은 학살 등 잔혹행위를 나타낸다. 무어는 호주 원주민의 숨겨지고 잊혀진 광대한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와 과거, 미래를 연결하려 했다.
원주민 예술가들의 작품이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휩쓸었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국가관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곳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이 호주 아키 무어의 ‘친족과 친척(Kith and Kin)’에게 돌아갔다. 호주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전(본전시)에 참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명으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Mataaho Collective)에게 돌아갔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지난 20일 개막식을 열고 수상작을 발표했다.
심사위원단은 호주관 전시에 대해 조용하고 강력하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단은 6만5000년의 역사가 어두운 벽과 천장에 새겨져 있다. 강렬한 미적 감각, 서정성, 숨겨진 과거에 대한 공동의 상실을 불러일으키는 점에서 돋보이며 회복의 가능성도 희미하게 보여준다고 평했다.
뉴질랜드 여성 원주민 예술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는 대규모 직조 설치물 ‘타카파우(Takapau)’를 선보였다. 마오리 여성들이 출산 등 의식에 사용하는 전통 직조물을 대형으로 제작해 아르세날레 본전시장 천장을 감쌌다. 조명이 천장과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 패턴의 효과가 더해져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심사위원단은 빛나는 직조물이 전시장을 시적으로 가로지른다. 자궁과 같은 요람의 직조물은 모계 전통과 관련이 있으며, 우주적이고 안식처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밝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2022년 제59회 황금사자상을 흑인 여성 작가들에게 안겨준 데 이어 이번에는 원주민 작가들을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역사·정치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작품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이번 비엔날레 국제전의 주제는 ‘어디든 외국인이 있다(Foreigners Everywhere)’다. 라틴아메티카 출신 최초의 예술감독 아드리아누 페드로자는 선주민, 퀴어, 여성, 이주민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본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줄어들지 않는 대기줄…최고의 화제 독일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의 화제는 독일관이었다. 자르디니에 위치한 독일관 앞에는 프리뷰 기간 내내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관람객들은 2시간에 달하는 대기시간을 기꺼이 감수했다. 독일관은 터키 출신 예술감독 카글라 일크의 지휘 아래 6명의 예술가가 협업한 작품 ‘임계값(Threshold)’을 선보였다. 영상, 공연, 설치가 혼합된 한 편의 극과 같은 전시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는 대형 우주선의 이야기와 석면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의 이야기 두 축으로 이뤄졌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나선형 계단으로 이뤄진 좁은 수직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다. 석면 때문에 죽은 광부와 가족의 이야기가 층계를 올라가며 연극처럼 펼쳐지는데, 아버지이자 가장인 배우가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나체로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SF적이고 신화적인 우주선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과 잿더미와 분진으로 가득한 광부의 황폐한 집이 대비돼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풍긴다.
이집트관, 영국관, 프랑스관도 관람객들을 줄세우며 인기를 끌었다. 이집트관은 와엘 샤키의 ‘Drama 1882’로, 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우라비혁명(1879~1882)를 다룬 뮤지컬 영상과 조각 등을 선보인다. 영국관은 존 아콤프라의 ‘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으로 인종차별, 식민주의, 난민, 여성운동, 생태문제 등 현대사회의 광범위한 문제를 시적인 영상으로 엮어낸 걸작을 선보였다.
■베니스 곳곳에 K아트…‘희미한 냄새’ 한국관
한편 한국관은 ‘냄새’를 내세웠으나,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구정아-오도라마 시티’는 국내외 600명으로부터 한국의 기억에 대한 사연을 수집해 이를 16가지 향으로 표현해 전시장 곳곳에 보이지 않게 설치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만으로 한국에 관한 기억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16가지 향 가운데 밥 짓는 냄새만이 비교적 잘 느껴졌으며, 다른 냄새들은 잘 구별되지 않았다. 구정아 작가가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 ‘우스’가 내뿜는 16개의 향을 혼합해 논픽션이 출시할 상업 향수 ‘오도라마 시티’의 향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국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베니스 곳곳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한국관 30주년 기념전 ‘모든 섬은 산이다’가 몰타기사단 수도원의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열렸다.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 36명(팀)의 작업 가운데 1995년 첫 개관 당시 선보인 작품부터 최근 제작된 신작을 포함한 총 82점을 소개한다. 한국관 출품 작품 10점은 현재의 관점에서 재연됐다.
이밖에도 ‘1세대 추상미술 작가’ 유영국의 개인전은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숯의 작가’ 이배, 이성자의 개인전과 광주 비엔날레 30년을 돌아보는 아카이브 전시 등이 열렸으며 베니스 산 자코모섬에서는 안무가 안은미의 ‘핑키핑키 굿’ 공연이 열렸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날 공식 개막과 함께 일반 공개를 시작해 11월 24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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