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의 아니 근데]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주인공 임솔로 본…장애에 대한 닫힌 인식 > 갤러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갤러리

[이진송의 아니 근데]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주인공 임솔로 본…장애에 대한 닫힌 인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4-04-26 10:53

본문

휠체어 탄 현재를 벗어나 교통사고 전의 과거로…장애를 결함으로 만드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덧없는 가정을 해볼 것이다. 그때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지 말걸, 병원에 좀 일찍 데려갈걸, 그날 거기에 가지 못하게 막을걸…. 그 대상이 나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는 존재라면 절박함과 애틋함은 현실의 무력감과 만나서 부풀어 오른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이하 <선업튀>)는 4월8일 첫방송을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로, 이러한 상실을 주요 서사로 삼는다. 김빵 작가의 웹소설 <내일의 으뜸>이 원작이며, 김혜윤과 변우석이 주연을 맡았다. 주인공 임솔(김혜윤)은 삶의 의지를 놓은 순간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로부터 응원과 위로를 받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런데 10년 넘게 좋아했던 이 ‘최애’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절망의 순간 임솔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 도착한 곳은 류선재가 아직 가수로 데뷔하기 전 평범한 남학생이고 임솔은 열아홉 살 고등학생인, 2008년이다. 자신의 타임슬립 사실을 인지한 뒤부터 임솔의 목표는 단 하나다. 최애인 류선재를 지키자! 로코의 최강자인 김혜윤은 만화적인 설정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하고, 수영선수 출신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변우석은 그린 듯 근사하다.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려는 고군분투는 위안과 대리만족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청량한 청춘 로맨스물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임솔의 장애 설정이다.
임솔은 열아홉 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됐다. 류선재가 건넨 위로가 무려 구원이 되는 이유 역시 그때 임솔이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깊이 절망해 있었기 때문이다. 임솔의 장애는 원작 소설에서는 없던 설정이다. 그렇다면 임솔의 장애가 <선업튀>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드라마는 과거로 타임슬립하기 전에 임솔이 일상에서 겪는 현실적인 제약을 짧게 보여준다. 임솔은 회사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취업이 좌절되고, 교통 체증을 포함한 이동의 불편함 때문에 콘서트에 가지 못한다. 길 한가운데서 휠체어가 고장 나서 곤경에 처하고, 수시로 행인들과 부딪쳐 물건을 떨어뜨린다. 반면 사고가 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온 임솔은 거침없다. 선재에게 달려가 안기고, 선재를 괴롭히는 운동부원을 제지하고, 불이 난 집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화상을 막는다. 타임슬립 혹은 회귀물의 주인공은 미래를 안다는 점에서 신의 전지전능함을 닮았다. 과거로 돌아간 임솔은, 비록 미래의 정보를 발설하려고 하면 그대로 시간이 멈추는 제약에 걸리긴 하지만, 유능하고 주체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임솔의 활약은 ‘휠체어에 갇혀 있던’ 임솔과 대조된다. 2008년의 임솔은 류선재가 길에서 마주친 휠체어 사용자를 도와주는 장면을 아련하게 지켜본다. 이 장면은 류선재의 따뜻한 성품을 보여주고, 임솔이 휠체어 사용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하지만 동시에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휠체어 사용자와, 그런 도움이 필요 없는 지금의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임솔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다 현재로 돌아오면, 선재를 구하지 못한 현실과 하반신이 마비된 몸이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는 임솔의 장애, 그리고 휠체어를 탄 육체를 선재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무력함의 은유로 사용한다.
앞으로의 전개에서는 선재의 비극만큼이나 임솔의 사고를 피하는 일이 중요해질 것이다. 시청자들의 추측대로 임솔이 사고를 피하고, 장애 때문에 접었던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
후천적 장애를 가진 육체를 ‘과거의 온전했던 시절’로 소환하고, 그때에야 비로소 서사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 시작되고, 과거 시점에서 그 사고를 막아 ‘미래의 온전한 몸’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tvN, 2023)에서도 드러난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 은결(려운)은 과거로 타임슬립해서, 젊은 시절의 아빠 이찬(최현욱)을 만난다. 아빠는 후천적 청각장애인이지만 은결이 만난 아빠는 아직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청각장애를 얻기 전이다. 은결은 처음으로 아빠와 음악적 교감을 나누고, 함께 밴드를 결성하여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 그리고 아빠가 청각장애를 갖게 되는 사고를 막으려 한다. <선업튀>와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발상은 사실 새로울 것 없다. 기술의 발전을 내세우는 광고에서 ‘처음 소리를 들어보는 청각장애 아기’ ‘인공지능(AI) 기술로 만들어낸 농인 엄마의 목소리’ 같은 감성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올해 초 장애인 혐오 논쟁이 일었던 아이유의 ‘Love wins all’의 뮤직 비디오 역시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비슷한 맥락이다. 장애가 있는 주인공들은 캠코더 속에서, 허구적 상상 속에서 온전한 육체와 예쁜 옷,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이 연출은 의도와 무관하게, ‘이런 평범하고 사소한 행복’은 실재하는 ‘결함이 있는’ 몸이 아니라 ‘가상의 정상화된 몸’에게 허용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다.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 후마니타스, 2022)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장애가 있는 몸을 과거의 몸이나 앞으로 되어야 할 미래의 몸이 아닌 현재 상태 그 자체로 볼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 위에 과거와 미래가 겹치면서 장애가 초현실적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접힌 시간성(folded temporalities)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접힌 시간성은 정상적인 과거로 현재를 대신하고, 동시에 특정한 종류의 정상적인 미래를 현재에 투영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현 상태를 공고히 한다. 이는 장애인이 사회로 ‘복귀’하려면 먼저 치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명령에 담긴 전제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즉 치유가 당위가 되면, 치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몸은 일제히 ‘정상화’를 목표로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치유되지 않거나 치유를 원하지 않는 몸을 배제하거나 부정하는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은 서문에서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복제 소식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의 사례를 언급한다. 황우석은 강원래의 휠체어 댄스 공연 뒤에 등장해서 저 강원래군을 벌떡 일으켜 휠체어 댄스를 추억의 한 작품으로 떠올릴 미래를 약속한다. 장애는 치유와 치료의 대상이 되고, 장애가 없던 과거와 장애가 치유된 미래만이 유의미한 시간으로 구성된다. 강원래가 치유를 열망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장애인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나, ‘현재의 몸’으로 보여준 휠체어 댄스는 사라진다. 즉 대개 의학적 치료를 통해서 질병과 장애를 없애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뜻하는 치유의 드라마는 장애와 질병을 갖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나 환경보다는 치료를 우선시하는 관점을 강조한다.
시인이자 교육가이며 젠더퀴어이자 뇌성마비 장애인인 일라이 클레어 또한 장애가 있는 몸을 결함과 문제 있는 몸으로 진단하고 치유가 필요하다고 보는 인식에 반박했다. 클레어는 자신은 부자연스럽거나 결함이 있는 존재가 아니며, 문제는 어떤 특성을 결함으로 만드는 비장애인중심주의와 사회구조라고 지적한다. 경사로 없는 계단이나 점자 안내의 부재, 경직된 교육 방식 같은 것들이 어떤 특징을 ‘문제’로 만드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어떤 몸을 문제로 규정짓고, 정상적인 몸으로 ‘복귀’시키고자 하는 치유 개념은 장애뿐만 아니라 다이어트나 피부 미백 크림 같은 일상적인 요소까지 확장된다. 클레어는 타인이 결함이라고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고유함이라고 받아들인다. <눈부시게 불완전한>(일라이 클레어 지음, 하은빈 옮김, 동아시아, 2023)은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는 근사한 제목이다. 비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완전무결할 수 없는 존재이다. 누구나 결함이 있다. 그 결함 또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삶이다. 규범적 결함이 곧 정체성이자 자부심이라는 클레어의 선언은 낯설다. 그러나 어떤 몸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드는, 배제하고 멸시하는, 끊임없이 치유를 강요하는 폭력이 없다면 수용과 정체화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선업튀>는 ‘쌍방구원’ 서사다. 류선재는 임솔을 절망에서 구했고, 임솔은 다시 류선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려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임솔의 장애는 ‘접힌 시간성’ 속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절망적인 현재로 소환되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전개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온전한 몸’을 획득하는 것이 해피엔딩의 조건이라면, 2023년의 임솔이 살아가는 현재는 ‘구원’과 치유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 이것은 예쁜 화면이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음악, 두 배우의 찰떡같은 케미로도 중화할 수 없는 뾰족한 진실이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혐오문제’를 우리는 얼마나 이야기하며 살고 있을까. 서로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나인채씨(27)가 말했다. 모여 앉은 참가자 너덧 명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를 무대로 혐오문제 말해요’라는 제목의 모임 참여자들이 21일 경기 수원시립미술관 1층에 둘러앉았다. 이들은 여성 노동을 주제로 한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둘러본 다음 각자의 감상을 나눴다.
대화에 앞서 이 모임을 주최한 미디어 스타트업 모어데즈의 대표 홍슬기씨(33)가 ‘약속문’을 함께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정한’ 모임을 위한 약속문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화가 시작되자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물류센터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해아씨(활동명·35)는 아직도 ‘여자랑 얘기하기 싫으니까 남자 바꿔’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시를 보며 내 노동도 저평가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난받을 걱정 없이 안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날 모임에서 ‘무수’라는 이름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무수한 존재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그가 3년 넘게 발행해 온 혐오 이슈 뉴스레터 ‘모보이스’에서 사용하는 필명이기도 하다.
홍씨의 활동 공간은 온라인 공간인 뉴스레터에서 오프라인 모임까지 확장돼 왔다. 홍씨는 혐오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홍씨는 여성·이주민·동물·퀴어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문제를 담은 기사를 엮어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를 보낸다. 2021년 4월2일 첫 발행 이후 1년쯤 지났을 때 100명을 넘겼던 구독자는 현재 450여명에 달한다.
혐오문제라고 하면 막연해 보이지만, ‘존재가 그 존재로 살기 힘들게 만드는 문제’가 곧 혐오문제라고 생각해요. 홍씨가 말했다. 스타트업에서 마케터 업무를 하던 그는 3년 전쯤 퇴사한 후 내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주제를 고민하다 혐오문제에 천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학생이 일부 여성계의 반대 끝에 입학을 포기한 사건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같은 여성 문제를 얘기하던 사람들이 어떤 존재에겐 폭력을 행사할 수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문제뿐 아니라 퀴어·난민·비건 등 다양한 소수자의 문제를 고루 ‘내 문제’로 인식하는 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뉴스레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뉴스레터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처음엔 ‘이 주제를 다루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며 뉴스레터는 적극적으로 구독을 해야 볼 수 있으니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점차 자신이 그었던 선 밖으로 나서고 있다. 뉴스 전달자를 넘어 ‘무수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을 보내기도 하고, 지난해 7월부터는 직접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주최하고 있다. 아픈 몸에 대해 글을 쓰는 모임, 수치심을 말하는 모임 등이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없더라고 말하는 홍씨는 그 자리에서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들을 때 설렌다고 했다.
요즘 그의 고민은 지속가능성이다. 프리랜서로 브랜딩 관련 외주 일을 병행하고 있는 홍씨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가난해지는 방법 외엔 없는지, 수익성이 공존할 수는 없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구독이 무료인 뉴스레터에 후원계좌를 연 것은 최근의 일이다.
홍씨는 스스로가 큰 변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을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혐오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 게시물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1,595
어제
1,644
최대
2,948
전체
246,776

그누보드5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