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변호사 공화국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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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12-09 09:56본문
배출하는 변호사 수를 줄여야 한다
사법 체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더불어 불신도 함께 커진 요즘이 ‘정의롭고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할 좋은 때인 것 같다. 나는 법관 출신인 선친 덕분에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사법적 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선친은 ‘법률소비자연맹’이라는 단체를 만드는 데 참여해 여러 해 동안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어떻게 하면 법률 소비자들이 좀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은 매우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정의로운 법 집행을 염려하기 전에 법의 사회적 지배력이 커지는 것 자체를 염려해야 할지 모른다. 사법의 영향력이 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이웃, 친지간에 서로 고발·고소하고 사법이 사람들의 일상에 간여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형사든 민사든 사건에 휘말려 경찰서나 법원을 들락거리게 되면 삶이 피폐해진다. 천국에서는 사법도 법조인도 필요가 없다. 사회가 혼탁할수록 법조인들이 할 일이 많아지고, 역으로 법조인들이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불행해진다.
우리의 자손들이 앞으로 살 세상에 대해 걱정되는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미국과 같이 ‘변호사 공화국’이 되는 것을 꼽겠다. 예전에 미국에서 벌어진 ‘바지 소송’은 유명하다. 로이 피어슨이라는 현직 판사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자신의 바지를 분실했다고 5400만달러 배상 소송을 건 사건이다. 미국에서 이런 황당한 재판이 흔히 발생하고 용인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법조인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법률 시장을 키우기 때문이다.
변호사 수를 늘려야 친절하고 손쉽고 값싼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의사들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러한 대중의 믿음에 부응해 변호사는 매년 1700여명씩 배출되고 있고 현재는 총 변호사 수가 3만7000명이 넘는다. 이미 인구 대비 변호사 수가 일본의 두 배에 달하는데 그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다양한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기대하고 변호사 수를 늘려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법률 비용이 늘어나고 국민의 법 의존도가 높아질 뿐이다. 변호사들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배고픈 변호사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위험해진다.
미국처럼 법률의 남용이 확대되거나 사람들 간의 법적 다툼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실은 변호사, 검사, 법관은 모두 같은 편이다. 지는 쪽의 변호사를 배려해 (궁극적으로는 법률 시장 규모의 유지를 위해) 애초부터 분명한 사건이라도 일찍 판결을 내주지 않는 법관들도 많다. 최근에는 명예훼손·모욕, 학교폭력 등의 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법률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 신규 변호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단 대중의 호응을 받아내기 쉽지 않고 단순히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자 수를 줄이는 것도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들이 합격률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가 교육도 변호사 시험 위주로만 이루어지는 문제가 있는 상황인데 단순히 합격률을 낮추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로스쿨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변호사 대신) ‘기업 법무실무사’ 자격시험 제도를 만들고 기업과 공공기관에 기업 법무실무사 채용을 확대하는 방안, 변호사 자격을 다원화하거나 지방 변호사를 별도 선발하는 방안, 판검사 트랙을 별도로 만드는 방안, 법관 수를 늘리는 방안 등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일부 로스쿨들을 통폐합해 전체 입학생 수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겠다. 현재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인재들이 고갈되고 있는 문제도 심각하니 전문가, 정부, 사법부가 힘을 합쳐 로스쿨 개혁 방안과 함께 이 문제도 연구해주시기를 소망한다.
지난해 12월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불법계엄으로 침몰할 뻔했던 민주주의를 건져냈다. 탄핵 광장은 응원봉으로 빛났고 깃발로 넘실댔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발언에 나섰고 광장은 경청했다. 광장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정권 탄핵을 넘어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외쳤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염원한 평등과 연대의 세상은 남태령에서 농민과 만남으로, 지하철역에서 장애인과 만남으로 빛났다. 광장은 어두울수록 밝아졌고 추울수록 따뜻해졌다. 놀람과 분노로 열린 광장은 환호와 희망으로 마무리되었다. 광장의 시간이 지나며 정권이 바뀌었고 이제 숨 가빴던 한 해가 지나간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세계로 한발 내디뎠을까? 우리가 살려낸 민주주의는 건강할까? 우리 사회는 이윤보다 생명을, 성장보다 안전을 더 중히 여길까?
광장에 기대어 집권한 민주당
국민의힘은 불법계엄을 ‘의회 폭거’에 맞선 행위로 정당화하며 극우 행태를 보인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국민의힘이나 극우세력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 금지 장소로 추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광장의 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뜻인가. 광장에 기대어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집회의 자유를 훼손하려고 한다. 그러고도 국민주권정부인가. 불법계엄 사태로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 여론이 높아졌지만, 국회에는 아직 개헌을 논의할 구조조차 없다. 검찰·언론·사법 개혁에는 발 빠르던 민주당이 정치개혁에는 왜 이리 더딘가. 벌써 권력에 취했나. 화무십일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즉시 9년 동안 공석이던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여태 반응이 없다. 갈수록 혐오와 차별이 기승을 떠는데 차별금지법은 논의되지도 않는다. 광장에서 나왔던 사회대개혁 과제는 대부분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성장은 여전히 힘이 세다.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조류충돌 위험과 생태적 악영향을 지적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강력한 탄소 흡수원인 갯벌을 없애고 탄소 대량 배출원인 항공기 운항을 늘릴 공항을 짓는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런 면에서 지난번 취소 판결은 역사적이며 상식적이다. 그래도 공항을 짓겠다며 항소한 국토교통부는 몰상식하다. 물론 대형 토건사업인 공항을 건설하면 경제는 성장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세계가 인공지능(AI)으로 들썩인다. 그런데 AI는 거저 돌아가지 않는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받쳐줘야 하는데 모두 막대한 전기가 든다. 반도체 국가산단을 짓겠다는 용인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발전소를 새로 짓고 전국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종착지는 결국 수도권이다. 지역은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로 떨어지고 송전탑 대란으로 지역의 삶과 자연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지역과 사람을 차별하고 경제는 성장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지금 그 열망에 부응하고 있나
세계보건기구는 야간노동이 ‘노동 주기 리듬’을 교란하여 혈압·혈당 조절 장애, 인지기능 저하, 심혈관질환 위험을 늘린다고 경고한다. 올해 쿠팡 물류센터 야간노동자 4명이 숨졌다. 모두 일용직 또는 계약직이다. 택배기사도 올해 4명이 숨졌다. 지난 11월 제주에서 숨진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는 매주 6일 11시간30분씩 일했다. 15일 연속 새벽배송을 한 동료도 있었다. 새벽배송 제한 논란에 대해 쿠팡은 말이 없다. 목숨을 건 야간노동과 새벽배송 덕에 쿠팡의 이윤만 날로 늘어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임금체납은 물론 폭력과 차별에 시달린다. 지난 2월 전남 나주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를 비닐랩으로 벽돌과 함께 감아 지게차로 들어 올렸다.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지난 7월 경북 구미에서 폭염으로 베트남 노동자가 숨졌다. 그날은 혹서기 단축 근무였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차별이 사람을 죽인다. 지난 10월 대구에서 베트남 유학생이 정부의 합동단속을 피하다가 추락사했다. 토끼몰이로 사람을 죽인다. 만만한 나라 사람에게 가하는 비열하고 냉혹한 인종차별이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우리가 지금 다시 만난 세계는 여전히 이윤과 성장을 생명과 안전보다 중시한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만나고 싶지 않은 세계’다. 광장이 닫히며 우리가 염원했던 세계로 가는 길도 사라졌다. 아니, 가본 적 없는 세계라 본디 길이 없었는지 모른다. 루쉰의 말대로 길은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생겨난다. 광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싶은 세계를 보았고 광장이 연대와 협력, 존중과 돌봄의 마음으로 열렸다면, 광장을 기억하고 일상을 광장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일상의 광장화로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내야 한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한국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표현의 자유 제약이 가장 심한 국가에 속한다.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형사·민사로 책임을 묻고,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모욕죄를 중범죄로 처벌하고, 행정기관이 방송 내용을 심의해 제재하고, 인터넷을 검열하는 유일무이한 국가다.
특정 정부가 일탈 행위를 한 결과가 아니다. 교대로 집권한 양당 가운데 어느 한 정당이라도 통제를 포기했으면 이렇게 이중삼중 통제망을 구축하지 못한다. 양당 정부는 예외 없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에 권력자원을 동원했다.
이명박은 언론 탄압, 여론 통제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탄압·통제에 기여한 노무현의 역할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무현은 임기 말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해 행정부에 편입시킨 뒤 방송 심의는 물론 인터넷 통제도 맡겼다. 이명박 당선인이 정부 인수를 준비하던 2008년 1월 노무현은 “방통위는 다음 정부가 누가 되느냐에 관계없이 정부에 속해야 한다”며 언론계·시민단체 반대를 묵살했다.
이명박·박근혜가 노무현 선물로 얼마나 열심히 방송·인터넷을 통제했는지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윤석열도 마찬가지다. 특히 문재인은 자신을 비방한 일개 청년을, 폐지하겠다던 모욕죄로 고발해 청년이 10개월간 경찰로부터 주변 행적에 관한 집중수사를 받도록 괴롭혔다. 이재명도 범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어느 정부보다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통제 방안을 내놓았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 정부가 하던 일을 하는 것이므로 특별히 더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이재명이 내란 극복으로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해낸 민주주의 수호자란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그의 조치에 좀 더 눈길이 간 것뿐이다. 그가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지키는 일에 과거 정부와 달리 적극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조금 생긴 것뿐이다.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 통제는 더불어민주당 대 국민의힘의 문제도, 진보 대 보수의 문제도 아닌 권력 대 시민의 문제다. 권력은 본래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허위·가짜 정보까지 보호하는 건 아니다”라고 한 이재명의 견해는 진지하게 토론해볼 가치가 있다. 정부가 처벌하려는 허위정보에는 권력 비판이 포함된다. 허위정보 처벌은 비판할 자유,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을 처벌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당시 세상은 MBC 보도를 의심하고 공격했다. 박근혜 국정농단 의혹, 초기 비상계엄설은 허위정보나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만일 가짜뉴스, 허위정보를 이유로 보도를 금지하거나 발언을 처벌했으면 우리는 영영 진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거짓, 오류는 진실을 손에 쥐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계몽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진리가 오류와 충돌해야 진리를 시험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류조차 값지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의 핵심이라고 하는 건 이 자유가 다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한 정치적 토론을 할 수 없고, 그 결과, 주권 행사가 침해된다.
집권세력은 자신들이 내놓은 법을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라고 명명했다. 법을 하나 뚝딱 만들어내면 인간 세상에서 허위정보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건 인간이라는 기계의 잘못된 설계도를 뜯어고치겠다는 것과 같다.
인간은 확신편향, 반확신편향과 같은 인지편향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진실과 거짓의 칼 같은 극단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 사이 넓은 회색지대에 거처한다. 역사는, 오늘의 진실이 내일의 거짓이 되고, 오늘의 거짓이 내일의 진실이 된 기록으로 넘친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기득권에 해롭지 않은 표현을 할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필연적으로 공격을 유발하는 말을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공격하는 것, 다른 사람이 억압하려 할지도 모르는 정보를 알리는 것,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관점들을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세계는 전체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세계를 원한다면 법 개정이 아니라 세계 개조를 해야 한다. 거짓 없는 세계에 혹시 금붕어가 살지 몰라도 인간은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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