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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수능,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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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43회 작성일 25-12-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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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능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특히 절대평가인 영어 1등급 비율이 3.11%에 불과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난이도 부분을 더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6~10% 수준의 1등급 비율을 목표치로 삼고 출제 방향을 잡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절대평가란 성취 목표에 따라 출제된 문항들을 통해 평가하는 방식이며, 교육과정에 따른 목표치가 분명하다면 그 결과로 1등급이 3%가 나오건 10%가 나오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절대학습성취의 결과를 드러낼 뿐, 시험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등급별 비율을 먼저 정해놓고 문제 수준을 그에 맞추겠다는 원장의 말은 결국 이 시험이 무늬만 절대평가일 뿐 실제로는 선발의 편의를 위해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던 상대평가의 재판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교육부가 이를 전혀 몰랐다는 듯 “수능 출제와 검토 전 과정에 면밀한 조사를 즉시 시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실수라기보다는, 지난 30여년 동안 이어온 물수능 불수능, 오답 논란, 재수생 증가 등, 제 본분을 잃어버리고 단지 선발의 편의를 위해 이리 꼬이고 저리 뒤틀린 수능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1993년 처음 실시된 수능을 설계했던 박도순 초대 교육과정평가원장은 대학 수학을 위한 자격시험 성격이었던 수능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선발을 위해 학력고사처럼 변질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3년, 당시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은 수능 비중을 대폭 낮춰 자격고사화하자는 의견을 공식 제기했다. 이때부터 이미 문제는 심각했던 것이다. 최근에도 비판은 이어졌다. 서울대 입학본부장을 지낸 권오현 교수는 현행 수능이 교육적인 요소가 빠지고 게임처럼 변했으며, 궁극적으로 그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때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교수 역시 “수능으로 고통받는 교육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쓴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교육적 수능’은 애초 성립 불가능한 형용모순이라고 했고,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역시 수능에서 매번 문제 오류가 반복되는 이유는 ‘객관식 문항의 출제에서 오류를 완벽하게 바로잡고 난이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국 석학들도 한국의 수능은 터무니없이 어려운 문항들로 채워져 있다고 했다. 올해 국어 17번 논란에 대해 평가원이 ‘출제의도를 알면 정답을 말할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수능이 얼마나 교육적 가치를 잃고 그 기능이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이제 수능은 그 사명을 다했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문재인 정부는 소위 조국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수도권 주요 대학들에 정시선발 비율 40%를 강제함으로써 꺼져가는 수능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 5월 발간된 한국교육개발원 브리프는 서울 주요 대학 정시 40% 정책과 수능 중심 전형 확대가 n수생 증가와 교육 불평등 심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물론 교육부는 현재 고1부터 40% 정책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고교학점제 기반 입시를 생각하면 완화 정도로는 어렵다. 과감하게 수능에서 난도를 낮추고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답게 출제, 평가함으로써 자격고사화하거나, 아예 이참에 수능을 폐지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수능이 폐기되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긍정적 변화들이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수능을 겨냥하던 n수생 규모가 확실히 줄어든다. 둘째, 적어도 대규모 수능시장을 겨냥한 사교육 시장이 붕괴한다. 셋째, 수능 점수가 사라지면 대학서열화 경향도 약화된다. 넷째, 대학들은 자신만의 입시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다섯째 고교학점제 이후 교육 정상화의 틈새가 넓어진다. 물론 수능이 사라진 자리에 부정 입학의 씨앗이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교육부는 재정사업 지원 철회 등 대학 차원의 생존이 걸릴 만큼의 징벌적 대응을 해야 한다. 또한 수능에 기대던 재도전 기회를 대체할 새로운 기회의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과 같은 편입제도, 유럽과 같은 대학 간 학생이동, 그리고 무전공 입학 또한 또 다른 재도전 기회가 될 수 있다.
급속한 인구 급감과 AI 산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사회는 더 많은 청년들의 사회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전 국민이 수능으로 애태우고, 청년들이 소중한 시간을 n수에 바치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 최대 과제는 수능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독서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루스 윌슨(93)은 영국 문학의 거장 제인 오스틴(1775~1817)이 자신의 노년을 구했다고 말한다.
시작은 권태에서부터였다. 가족 모두 무탈하고, 누가 봐도 ‘괜찮은’ 삶이었다. 하지만 예순 살 생일 파티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세상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졌구나’ 그는 벼락처럼 깨달았다. 이대로는 남은 인생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나이 일흔, 저자는 남편에게 졸혼을 선언한다.
시골집을 장만한 그는 그곳에서 가족과 일을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고자 했다. 평생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해온 그는 평생 사랑해온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다시 읽기로 한다.
책은 10년간 시골집에 칩거한 저자가 제인 오스틴 작품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쓴 회고록이다. 열다섯 살에 처음 읽자마자 반했던 <오만과 편견>부터 자주 읽지는 않았던 <노생거 수도원> 등 6권이 소개된다. 책 뒷부분에는 귀여운 ‘독서 처방전’이 수록돼 있다. 저자는 불안증에 효과적인 치료제로는 <맨스필드 파크>를, 극심한 기분 변화가 문제라면 <이성과 감성>을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실제 저자에게 제인 오스틴의 책은 치료제였다. 그는 가부장제의 짙은 그늘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서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되살아난 의욕은 성취로 이어진다. 그는 88세 때 시드니대학에서 독서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90세에 이 책을 출간한다.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한다.
평화를 뜻하는 영어 ‘피스(peace)’는 라틴어 ‘팍스(Pax)’가 어원이다. 팍스에 나라나 세력이 더해지면 ‘장기간의 안정·번영’ 체제가 된다.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로마의 최전성기인 ‘팍스 로마나’가 있었고,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를 구가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시작했고, 1990년대 소련 붕괴로 확고해졌다. 한 세력이 압도적 힘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강제하는 ‘팍스의 시대’도 실상은 패권의 시대였다.
역사에 영원한 제국은 없듯 팍스 아메리카나도 쇠퇴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미국 뜻대로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시기가 아니다. 당장 중국의 부상과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주도로 8개국이 참여하는 경제안보협력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가 출범했다. 모래의 주성분인 규소(실리콘)의 산화물인 실리카는 반도체 핵심 소재다. 팍스 실리카는 반도체·인공지능(AI)·핵심 광물 등을 아우르는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기술동맹인 셈이다. 한국·일본·네덜란드는 기술력, 호주는 핵심 광물, 싱가포르는 물류 분야에 강점이 있다.
팍스 실리카는 중국 견제 목적이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약한 고리인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대응을 통해 중국의 기술굴기를 뿌리치고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를 구축하길 원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당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도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을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캄보디아·미얀마·짐바브웨 등 19개 저개발국·개발도상국과 희토류 협력체를 구성했다. 미·중 간 공급망 블록화 경쟁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내걸고 있다. 이를 위해선 핵심 광물 및 에너지 공급망 안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팍스 실리카 참여가 불가피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쪽 편에 선다는 것은 도전적 과제이고, 한·중관계의 미래도 능동적으로 살펴야 한다. 팍스 실리카의 미래가 어떨지,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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