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상간소송변호사 [에디터의 창]‘시민 이재명’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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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5-12-20 22:21본문
인간의 1만배 지능을 가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당연히 좋은 것이라고 믿는 이 사업가의 말에 이재명이 보인 반응은 시민으로서 보인 상식적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시민들은 이 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섬뜩하다’고 했다. 다만 그들 상당수는 ‘어쩔 수 없는 흐름 아니냐’며 체념했다.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파고에게 패배한 뒤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느끼는 허무와 좌절’을 드러내며 바둑계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과 달리 AI의 수를 충실히 외워 세계 1위 바둑기사가 된 신진서처럼.
이 대화에는 AI의 ‘활용 vs 거부’라는 이분법을 넘어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우선 손정의의 말에는 AI를 과도하게 의인화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이미 스며들어 있다. 최근 만난 AI 활용법 강사는 AI를 지칭할 때마다 ‘이 녀석’이라고 말했고, 동료 기자는 ‘얘(AI)를 잘 부려먹기 위해, 내 문체와 생각을 교육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인간 지성과 AI를 동일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지만, 결국 인간을 기능적으로만 평가하는 도구적 관점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AI로 쓴 문학 작품이 노벨상을 받는 날이 올 거라는 손정의의 말은 <먼저 온 미래>를 쓴 소설가 장강명의 불길한 예상과 일치한다. 그것은 ‘딥러닝의 아버지’ 제프리 힌턴 이 우려하는 바이기도 하다. 손정의는 그런 미래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된 뒤 젠슨 황, 샘 올트먼 등 많은 AI 관련 기업인을 만났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AI 개발에 자원을 집중할 것을 권했다. 이재명 옆에는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술자, 기업인 출신 참모와 경제관료가 즐비하다. 이들은 AI가 인류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AI 거품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기술낙관론자들이다.
하지만 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리면 낙관만 하기는 어렵다. 일터와 배움터에서 AI로 인한 많은 혼란과 불안이 생겨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AI로 인해 대량 해고되거나 감시를 받고, 고객 불편이나 피해에 대한 책임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AI가 도입돼 오진, 안전 위협, 비용 부당 청구 위험이 있다는 호소가 나온다. 채용·대출 심사나 인사 평가 과정에서 AI가 활용되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내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런 혼란과 불안에 대한 대비는 미흡하다. 내년 1월22일부터 시행되는 인공지능기본법은 여전히 구멍이 많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사람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주거나 취약성을 악용하는 AI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고영향(고위험) AI’ 사업자의 범위가 좁으며, AI로 인한 피해에 대해 권리 구제 조항이 없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입법예고된 시행령도 상위법의 공백을 해소하지 않아 공공장소 얼굴인식, 직장과 학교의 감정인식 등 위험한 AI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AI가 청소년의 망상을 부추겨 자살이 빈발하고 있다며 42개 주정부가 나선 미국보다도 토론이 적다.
이것은 정부의 AI 논의가 압도적으로 산업적 측면에 치중돼 있는 탓이 크다. 시민들의 우려는 AI가 초래할 불안정한 미래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국가가 제 역할을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부는 새로운 기술이 시민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논의하는 데 더 많은 역량을 써야 한다. 단언컨대 손정의는 금붕어가 될 인간에 자신과 같은 빅테크 자본가들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주간경향] “기록 접수 전이라도 항소심 판결과 1심 판결을 면밀히 검토해 신속하게 상고심 사건을 진행한다”, “공직선거법상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을 최대한 준수해 신속하게 처리한다.”
지난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초고속으로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 환송한 판결 과정을 설명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은 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한 판사(심의관)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쓴 문건에 등장한다. 대법원장을 보좌해 인사·예산 등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의 사건 처리 방향까지 검토한 것이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이 같은 문건들이 크게 논란이 됐고, 검찰은 관련자들을 직권남용죄로 재판에 넘겼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 형사12-1부(홍지영·방웅환·김민아)는 지난 11월 27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하지만 1097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법원은 사법행정 업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면서 상당수 문건은 문제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사건의 쟁점과 처리 방향을 검토하고 검토 자료를 재판부에 전달하거나, 재판부에 연락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정당한 사법행정 업무’라고 했다. 여러 법조인은 “판결대로면 법원행정처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을 다수 검토했다.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의 정부 측 입장을 검토시킨 행위,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법적 책임을 검토시킨 행위 등은 2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2심 재판부는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했다.
무죄로 판단된 행위 중 하나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에 국정원이 댓글 조작을 통해 개입한 사건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과 대선의 공정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2015년 법원행정처 문건엔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죄 부분을 유죄 선고할 경우 청와대가 크게 불만을 표시했던 관심 사법 현안을 신속 처리’, ‘사법부에 대한 불만을 완화하고, 국정원 사건도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정될 것이라는 암시 제공 효과’, ‘본 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조속한 시점에 선고’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심의관에게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문건 작성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문건이 사법행정 영역에 속한다고 했다. 사법부의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청와대에 민감한 구체적 사건의 진행 경과와 파장, 영향을 검토하는 게 업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말이다. “법원과 관계된 청와대, 국회 등 각종 국가기관과의 충돌·갈등 및 여러 사회·정치적 현안들에 대응하는 것도 사법행정사무의 일부다. 그 의사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작성되는 내부 보고서에는 불가피하게 정책적·정무적 관점에서의 판단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행정처가 ‘기록 접수 전이라도 판결을 검토’, ‘신속 진행’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현실적 의도와 구체적 실행방안이 없었다고 했다. “법원 조직의 구조와 직제상” 애초에 행정처가 대법원 재판을 임의로 좌우할 수 없으므로 문건이 재판에 개입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임 전 차장은 “브레인스토밍,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문건들”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재판부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서는 ‘외교부를 배려해 절차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문건도 작성했지만, 재판부는 이것도 같은 논리(사법행정의 영역이고, 재판 개입 가능성이 없다)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강제징용 문건 일부는 실제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문건도 위법하지 않다면서, 문건이 전달된 때는 일본 기업의 상고이유서가 제출되지 않았고 주심 대법관이 지정되지 않은 때라 사건 처리에 반영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를 댔다. 오히려 재판부는 대법원이 행정처 문건을 ‘참고자료’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이 놓친 쟁점을 법원행정처 쪽에서 알려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행정처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관해 조사연구 업무를 진행할 직무상 의무가 있는 재판연구관실에서 참고자료로서 파악할 만한 내용”이라고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한 사실도 있다. 임 전 차장이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을 통해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지국장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장에게 중간판결적 판단을 해줄 것, 선고 때 외교부 의견서를 언급해줄 것을 요청한 행위가 대표적이다. 1심 재판부도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임을 인정했지만, 1·2심 재판부 모두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일단 직권(일반적 직무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논리다. 2021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직접 영향을 준 2건을 유죄 판단한 적이 있지만, 다른 재판부는 재판 개입에 대해 줄곧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중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관계자 사건에서는 직권의 남용은 있었지만, 의무 없는 일은 없었다는 또 다른 논리로 무죄 판단을 했다. 검찰 공소사실은 임 전 차장이 서울북부지방법원장에게 전화해 ‘서 의원이 지역구 관계자 사건에 대해 벌금형 등의 선처를 요구했는데 선고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으니 피고인이 변론 재개 및 기일 연기 신청을 하면 받아주도록 담당 재판부에 전달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해당 법원장이 그 사건 담당인 A판사를 불러 말을 전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임 전 차장(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법원장에 대해 직권을 행사하는 관계에 있고, 변론 재개 및 기일 연기 요청은 제3자의 사적 이익 추구와 청탁이라는 점에서 직권의 남용은 성립한다고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해당 법원장이 ‘벌금형 선고’가 아니라 ‘변론 재개 및 기일 연기’만 언급한 점, ‘받아주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살펴봐달라’고 했을 뿐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를 “일반적인 조언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정한 방향으로 절차를 진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장으로서는 피고인의 변론 재개 및 기일 연기 신청이 있으면 이를 검토해서 허부 결정을 내려야 할 직무가 있으므로, (피고인의) 신청을 신중하게 검토해달라는 일반적인 조언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A판사는 법원장 말 때문에 변론 재개 사유가 있는지를 다시 검토해보게 됐지만, 법원행정처와 법원장의 개입으로 의무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청탁은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통해 서 의원 관계자 사건 재판부의 B판사에게도 전달됐다. B판사가 거절하자 심의관이 재차 독촉성 발언까지 했는데,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재판 개입이 실현되지 않았다면서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이 판결에 대해 공동성명을 내고 “법원은 스스로 정의로울 기회를 버렸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사법농단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뿌리째 흔든 중대한 범죄지만, 법원은 직권남용에 대한 좁디좁은 법리 해석을 유지해 1심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기회를 버렸다”고 했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정권과 정치권이 관심 갖는 사건을 정무적으로 검토하고 재판 개입성 행위를 실행한 주체는 모두 ‘법관’이다. 법관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법원행정처 문건은 대체로 법원 조직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정권이나 정치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작성됐다. 과연 이런 업무를 법관이 하는 게 맞는지,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뒤 일선 재판부로 돌아왔을 때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2018년 9월 사법농단 온상인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 체제로 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이 당시엔 사법개혁에 소극적이었고, 최근에서야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 특히 인사권 문제가 있다. 법원행정처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게 대법원장이고 대법관 제청과 법원장 지명 등 전국 법관 인사 권한을 대법원장이 갖는 상황에서 판사들이 윗선 눈치를 보는 관료화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법농단 사건에선 사법행정을 비판한 판사들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준 행위도 드러났지만, 이것도 현재까지 법원에서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장에게 광범위한 인사권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임 전 차장 사건을 심리한 2심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물의야기 법관을 분류한 사유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사유에는 ‘법관이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등으로 법원장의 경고를 받은 사유’가 포함돼 있다. 이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대법원의 이재명 판결 이후 법원 내부통신망에 공개 비판글을 올린 판사들도 물의야기 법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재판부 구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법원행정처는 정기인사 이후 각급 법원장들에게 물의야기 사유를 담은 ‘참고사항’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엔 ‘형사재판 등 사무분담 신중 의견’이 포함됐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판사들에게는 형사재판을 맡기지 말라는 의견을 법원장들에게 보낸 것이다. 지금은 일선 판사들이 참여하는 사무분담위원회가 생겼지만, 여전히 법원장 뜻대로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나 대법관 증원 등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지만 그 근본에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 인사권의 힘이 있다”며 “세밀한 사법개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신속한 재판’은 수차례 강조했지만, 사법농단 사건에서 비롯된 법관 독립 침해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은 바가 없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내세우며 국회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지금까지 평전이 나온 스님은 모두 4명이다. 12년 전 성철스님을 시작으로 용성스님, 만암스님, 혜암스님의 평전이 차례로 출간됐다. 불교계에서 평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단순한 전기가 아닌, 한국 불교의 방향을 바꾸고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번째로 묘엄스님(1932∼2011) 평전이 출간됐다. 비구니 스님으로는 첫 평전의 주인공이다. 비구니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묘엄스님은 비구니 교육의 체계를 세웠고 인권과 교단을 확립하는데도 혁명적 역할을 했다. 비구가 율사(불교 계율에 정통한 승려)를 장악하고 있던 풍토에서 스님은 최초의 비구니 율사로 불교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업적도 업적이지만 묘엄스님은 청담스님(1902∼1971)의 딸이자 성철스님(1912∼1993)의 첫 비구니 제자라는 인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청담스님은 성철스님과 함께 한국 불교 중흥의 기틀을 닦았으며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청담스님의 표현을 빌면 묘엄스님은 ‘파계의 씨’의 결과물이다. 청담스님은 출가 당시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부인은 남편이 가는 수행의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며 이혼을 하고서도 시어머니를 모셨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청담스님의 모친은 스님이 된 아들을 찾아가 눈물로 애걸했고, 급기야 청담스님은 경남 진주의 옛집으로 찾아와 부인과 하룻밤을 보낸다.
1932년 음력 1월.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 아닌 딸 인순, 즉 묘엄스님이었다. 일제강점기 막바지.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묘엄스님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부모가 이혼한 뒤 태어난 상태라 당시 호적에 사생아로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진학하지 못하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야 할 상황에서 어머니는 편지 한장을 쥐어준 채 딸을 아버지 청담스님이 머무는 경북 문경 대승사로 보냈다. 청담스님은 도반인 성철스님에게 딸의 출가를 부탁했다.
“니, 중 될 생각이 없나?”하는 성철스님의 질문에 인순은 “비천해 보이는 여자 중은 안될 것”이라고 당차게 대답한다. 하지만 총명하고 자기 주관이 분명히 서 있던 인순을 기특히 여긴 성철스님은 틈나는 대로 우주만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선지식의 풍요함에 조금씩 물들어가던 인순은 성철스님에게 묻는다. “제가 출가를 하면 스님이 아는 것을 저한테 다 가르쳐줄랍니까?” “가르쳐주지, 암만” “그러면 제가 중이 되겠습니다”.
성철스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잘 배워서 네가 비구니계의 혁명을 일으킬 큰 스님이 되라”고 했다. 인순은 성철스님에게서 묘엄이라는 법명과 계를 받았다. 성철스님에게 계를 받은 비구니는 묘엄스님이 유일하다. <묘엄 평전>에선 “묘엄은 일평생 바다보다 깊은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신심 깊고 지혜로우며 자비로운 수행자로 성장해 비구니계의 우뚝 솟은 지도자가 되는 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했다”고 쓰고 있다.
이번 평전은 묘엄스님의 상좌이자 봉녕사 주지인 진상스님이 묘엄평전간행위원회를 꾸려 3년간의 자료조사와 연구, 지인들의 회고를 모은 끝에 이뤄졌다. 수행자의 삶에 대해 꾸준히 써 온 박원자 작가가 집필했다. 진상스님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출가한 사람들은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클 것”이라며 “그러한 아쉬움을 은사스님의 숨결과 치열한 일생이 담긴 평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출판기념식은 오는 26일 수원 봉녕사에서 14주기 추모 다례재와 함께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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