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트럼프의 ‘금관’, 젠슨 황의 ‘치맥회동’, 레빗의 ‘K-뷰티’···경주 APEC을 대표하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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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5-11-05 09:49본문
APEC의 성과에 대한 평가와 관계 없이 행사 기간 중 몇몇 장면은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내내 회자됐다.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을 꼽는다면 단연 ‘트럼프의 금관’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당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과 천마총 금관(복제품)을 방문기념 선물로 제공했다.
트럼프가 금관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장면은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온라인에서는 트럼프와 금관을 합성한 온갖 ‘밈’이 창작됐고, 외신은 바디 랭귀지 전문가까지 동원해 ‘트럼프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미세한 표정까지 분석해 전하기도 했다. ‘노 킹스(NO KINGS)’ 시위 열기가 뜨거운 미국에선 “꼭 왕관(금관)을 줬어야 하나”는 지적이 나오는 등 현지에서 더 화제가 됐다.
경제산업 부문에선 시총 7000조원의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 CEO의 치맥회동이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지난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강남 한복판에서 맥주 ‘러브샷’을 하는 장면은 파격 그 자체였다. “셋 중 내가 제일 어리다”며 너스레를 푼 정 회장의 모습이나 몰려든 시민들에게 직접 치킨을 나눠주는 이 회장의 모습은 국민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들 셋이 ‘골든벨’을 울리며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은 반도체·자동차 등 기술강국으로서 한국의 입지를 재확인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황 CEO 등이 치맥파티를 벌인 강남 ‘깐부치킨’ 본점은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2일 하루 임시휴점하기도 했다.
행사기간 중 각지에서 선보인 K-뷰티, K-푸드, K-팝 등은 한류 문화강국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대외적인 홍보의 장이었다. 캐롤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9일 자신의 SNS에 “한국 스킨케어 발견”이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국산 화장품 구매 인증샷을 올려 큰 관심을 받았다. K-뷰티존을 찾아 여러 화장품을 발라보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의 모습도 온라인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흑백요리사’로 해외에서도 유명한 에드워드 리 셰프가 총괄한 APEC 만찬 식단에는 각국 정상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라면·떡볶이·치킨 등 국민간식을 세계에 소개한 ‘K-푸드존’, 시진핑 중국 주석이 “맛있게 먹었다”고 한 황남빵 등도 여러 외신에 소개되며 회자됐다. 정상회의 만찬장에 사회자로 깜짝 등장한 배우 차은우, 갓을 쓰고 공연을 선보인 지드래곤 등을 각국 정상과 영부인들이 카메라에 담는 모습도 연출됐다.
관세전쟁을 앞세운 트럼프의 미국식 일방주의와 노동·인권·환경 등 포용외교에 매번 한계를 드러내는 APEC을 향한 반대의 목소리도 분명하게 울려퍼졌다. 국내 37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국제민중행동)’은 서울과 경주를 오가며 반 트럼프 시위를 주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달라”며 트럼프 환영집회를 연 보수단체와 우연인지 필연인지 트럼프 방한 기간 중 열린 내란재판에 유독 출석한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긴 장면이었다.
APEC의 성공을 기원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254명의 자원봉사자와 55명의 경북도 준비지원단 공무원들, 행사 기간 중 극심한 교통·통행 제한에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24만여 경주 시민들, “잼버리처럼 되어선 안된다”며 바가지 요금 등을 자율규제하고 나선 상인들의 모습 등도 기억되고 회자될만한 장면들이다.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방해를 뚫고, 뉴욕 최초의 ‘무슬림 사회주의자’ 시장이 될 수 있을까.
4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뉴욕 시장 선거는 형식상으론 맘다니(민주당)·커티스 슬리와(공화당)·앤드루 쿠오모(무소속) 후보의 3파전이지만, 사실상 ‘맘다니와 그 적들’의 싸움이다. 사상 최악의 분열상을 빚고 있는공화당과 민주당이 맘다니 당선을 막기 위해 한뜻으로 손을 잡는 진풍경까지 펼쳐졌다.
공화당은 쿠오모 후보를 맘다니 후보의 대항마로 내세우기 위해 선거 기간 내내 공화당 후보인 슬리와의 사퇴를 촉구했다. 쿠오모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맘다니 후보에게 패배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민주당의 주류 인사다. 지지율이 꼴찌를 달리고 있는 슬리와 후보의 당선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맘다니 후보를 막으려면 공화당 표를 민주당 인사인 쿠오모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슬리와 후보는 공화당의 전방위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쿠오모와 손잡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완주를 고집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 개입에 나섰다. 그는 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당신이 쿠오모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않든 선택지는 없다. 그에게 투표하라”고 자신의 지지자들을 독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가 당선되면 뉴욕시는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재앙이 될 것”이라며 “경험도 없는 공산주의자보다는 차라리 성공 기록이 있는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도 가세했다. 그는 이날 엑스에 글을 올려 2억2900만명의 팔로워를 향해 “공화당 후보인 슬리와를 지지하는 것은 맘다니의 승리를 굳힐 뿐”이라며 “슬리와에게 투표하는 것은 맘다니에게 투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머스크는 앞서 출연한 팟캐스트에서도 “맘다니가 무대를 빛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인정해야겠지만,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기꾼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맘다니 후보는 선거운동을 마무리하는 최종 유세에서 “미국 대통령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이번 선거에 개입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공약을 실현할 것이란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으며,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 실현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에게 우리는 무상버스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며 “무상버스에 필요한 예산이 약 7억달러인데, 쿠오모가 뉴욕주지사였을 때 머스크에게 감면해준 세금이 9억5900만달러였다. 이 도시의 모든 버스를 무상으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큰 돈”이라고 비판했다.
맘다니 후보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쿠오모는 같은 기부자, 같은 비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식을 공유한다”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이 쿠오모를 끌어안는 것은 쿠오모가 뉴욕시를 위한 최고의 시장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를 위한 최고의 시장이 될 것이란 걸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주류의 외면과 공화당의 공격 속에서도 맘다니 후보는 여전히 대다수 여론조사 결과에서 2위인 쿠오모 후보를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반맘다니 세력 역시 막판 결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기관인 아틀라스인텔의 최신 조사(10월31일~11월2일)에서 맘다니 후보(43.9%)와 쿠오모 후보(39.4%)의 격차는 5%포인트까지 줄어들었다. 슬리와 후보는 16%를 기록했다. 아틀라스인텔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난 2024년 대선을 가장 잘 예측한 여론조사 기관으로 꼽힌다. 격차가 축소되고 있는 것은 슬리와 후보의 공화당 표가 쿠오모 후보에게 빠르게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능성을 우려한 탓인지 맘다니 캠프 자원봉사자인 타마리는 경향신문에 “맘다니가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쿠오모를 꺾을 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현재 맘다니가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며 “안심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최대 규모 재외동포 경제단체인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제23대 회장으로 당선되면서 연임에 성공한 박종범 회장(68). 칠순을 목전에 둔 나이지만, 시종 하회탈 같은 미소를 띤 그는 활력이 넘쳤다. 44년의 역사를 지닌 월드옥타는 현재 75개국 154개 지회에 7000여명의 정회원과 3만6000여명의 39세 이하 ‘차세대 회원’을 두고 있다. 매년 봄에 세계한인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 가을에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연다. 여기에 지난해부터는 실질적인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상담과 투자 유치를 위한 코리아비즈니스엑스포를 겸한다.
그런 그에게는 수십년 동안 매일 아침 반복해온 습관이 있다고 했다. 양치 후 거울을 보며 5분 이상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영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곤 환하게 웃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날 누구를 만나든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이런 자세가 그의 일과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됐다.
박 회장은 19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직원 한 명을 둔 작은 무역회사로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3개 대륙 17개국에서 공장과 법인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송도에 이어 31일 경향신문사에서 박 회장을 인터뷰했다.
44년 역사 ‘월드옥타’ 한국 수출 플랫폼
- 월드옥타 회장 연임에 성공했는데, 소회가 어떻습니까.
“십자가를 졌다고 생각해요. 기쁨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죠.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연임에 도전한 거예요. 월드옥타가 대한민국을 위해, 한민족을 위해 설립된 만큼, 향후 2년은 기반을 더 확실히 다져 100년을 준비하는 조직으로 만들 겁니다.”
- 월드옥타가 하는 일은 뭔가요.
“1981년에 설립됐는데요. 당시 기본 목적은 첫째, 해외에서 사업하는 한인 경제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거였고, 둘째, 그 네트워크를 통해 당시 한국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속에서 한국산 제품의 수출 플랫폼이 되자는 거였어요. 이를 통해 한국 경제성장에 일익을 담당하자는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주로 중소기업 제품의 수출 플랫폼으로 기능했고요. 여기에 차세대 재외동포 경제인 육성 목적도 있습니다.”
- 지난 2년간 월드옥타를 이끌면서 거둔 성과는 어떤 건가요.
“많죠(웃음). 세계한인대표자대회와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코리아비즈니스엑스포로 확대 발전시켰어요. 이번 행사에서도 수출 유망 중소기업 450여곳이 참여해 해외 구매자들과 실질적인 수출 상담과 투자 유치 협력을 진행했죠. 또 한국의 청년 창업가들이 해외 자본의 투자를 받을 기회를 스타트업 경진대회를 통해 제공하고 있어요. 중요한 게 또 있는데, 수출 플랫폼뿐 아니라 수입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도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 각국 제품을 한국에 유통하는 일도 하겠다는 건가요.
“4년 전 일어난 ‘요소수 사태’를 생각하시면 돼요. 그때도 재외동포 경제인들이 한국에 요소수를 공급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는데요. 앞으로는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요소수, 희토류, 농산물같이 꼭 필요한 원자재를 한국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각국의 재외동포 경제인들이 가교 역할을 하게 할 계획입니다.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이러한 원자재는 곧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어요. 미국에서 사업하는 회원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전쟁을 선포한 이래 재미 한인 사업가들은 높아진 관세 때문에 수입 자체를 할 수 없었어요. 많은 경우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다행이에요. 물론 자동차 등 많은 분야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관세가 0%였던 것에 비할 순 없지만요. 아울러 이번 APEC 이후 중국, 러시아와의 민간 경제 협력이 훨씬 원활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3년간 대중 관계가 급랭한 데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서방의 대러 제재에 한국이 동참한 이래 한·러관계 악화로 재외 한인 경제인들의 타격도 크거든요.”
그는 월드옥타 회장 이전에 영산그룹 회장이다. 1999년 오스트리아 빈에 설립한 영산한델스(Handels·무역)에서 출발해 지금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17개국에서 공장과 법인을 운영한다. 승상용(승용차와 트럭·버스 등) 차량 부품 및 KD(Knock down·현지 조립형 반제품), 특수개발차량, 핸드드라이어 등을 공급한다.
- 맡은 일이 많아 꽤 바쁘겠습니다.
“영산그룹 본사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지만 슬로바키아, 체코, 튀르키예, 러시아, 인도, 한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알제리 등에 법인과 공장이 있어요. 여기에 월드옥타 회장까지 맡고 있으니 1년에 220일 이상은 출장을 다닙니다. 지난 2년간 비행기로 50만㎞를 날았죠. 2년 새 지구 12바퀴(지구 한 바퀴는 4만㎞)를 돈 겁니다(웃음).”
- 체력 소모가 클 텐데, 건강 유지 비결이 뭔가요.
“일단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는 편이고, 가능하면 어디에 머물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시간30분가량을 걷습니다. 빈의 집에선 숲길을 걷죠. 빈은 1구부터 23구까지 있는데 제 집은 19구에 있고, 바로 인근에 비너발트(Wienerwald)라 불리는 숲이 있어요. 베토벤이 매일 이 숲을 산책하며 영감을 얻어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또 회사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간간이 근육운동도 하고요. 물론 시간이 되면 골프도 칩니다(웃음).”
직원 한 명, 지하방서 첫발…위기를 기회로
-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새 삶이 시작됐어요. 이듬해 회사를 설립했으니까요. 당시 기아자동차 상사 부문의 오스트리아 법인장이었다고요.
“당시 기아차가 현대차에 합병되면서 귀국 통보를 받았어요. 그건 곧 해고를 뜻하죠. 실업자가 넘치는 시기여서 돌아가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어요. 두 아들의 교육 문제도 있어 내가 뭘 해도 네 식구 못 먹여 살리겠나 싶어 남았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선 할 만한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고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친구들을 찾아다녔고, 우크라이나에선 살다시피 했어요. 혼자 단칸방을 얻어 하루 2시간만 자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동분서주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제과공장에 한국산 비닐 사탕포장지를 납품한 게 첫 사업이라죠. 어떻게 따냈습니까.
“진짜 우연히 얻은 기회였어요. 어느 날 우크라이나 한 회사의 자동차부품 담당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저더러 대뜸 어디냐면서 자신의 빨간색 차를 보낼 테니 자기 회사 사무실로 빨리 오라는 거예요. 그런데 좀 의아하더라고요. 대리급이 차를 보낸다는 게. 그래서 다시 보니, 제가 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한 거였습니다.”
- 휴대폰에 저장된 동명이인이었군요.
“맞아요. 제가 통화한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된 페트로 포로셴코가 운영하는 거대 제과공장의 구매 총괄 사장이었어요. 이분이 과거 기아차 대리점을 하면서 저와 인연을 맺었거든요. 어쨌든 그 제과공장에서는 그동안 튀르키예에서 사탕포장지를 수입했는데 품질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인 제가 전화하니 너무 반가웠던 거죠. 당시 비닐을 비롯한 한국산 석유화학제품이 전 세계 으뜸이었거든요. 바로 한국에 있는 옛 직장 동료를 통해 사탕포장지를 들여왔어요.”
- 첫 사업부터 행운이 깃들었네요.
“그랬죠. 한국인 직원 한 명을 구해 반지하방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1년 만에 위기가 닥쳤죠. 사탕포장지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는 품질 문제가 발생했거든요. 수십만달러의 손실을 제가 메워야 했어요. 그러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다 갚았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감을 줘서인지 이후 더 많은 일감이 들어왔어요. 카메라 필름, 타이어, 배터리는 물론이고 2005년부터는 제 전문 분야인 자동차로 품목을 넓히면서 회사 규모를 키웠습니다.”
그는 타고난 ‘영업맨’이다. 1957년 광주 태생인 그가 조선대 경영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카투사 제대 후 1984년 입사한 첫 직장은 에너지 기업인 대성그룹이었다. 해외사업부에서 기획업무를 맡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영업을 원했고, 실제로 영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냈다. 1990년 기아자동차 상사 부문으로 이직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초고속 승진. 1996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법인장이 됐다. 그가 수행한 첫 임무는 러시아령인 칼리닌그라드에 유럽 자본으로 자동차 조립공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이때 맺은 폭넓은 인맥은 이후 그가 사업을 하는 데 단단한 반석이 된다.
안정궤도 사업, 러·우 전쟁으로 타격
- 회사가 커지면서 안정적 궤도에 들어선 건가요.
“2006~2008년 무렵에는 정말 잘됐어요. 2000년대 중반 우크라이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자동차 수요가 급증했거든요. 저는 그렇게 수요가 늘어나는 우크라이나 자동차 시장에 오스트리아 은행을 통한 금융 제공을 하며 한국산 차량을 공급했습니다. 2006년 1억유로, 2008년 우리 돈으로 1조원에 달하는 7억유로의 실적을 기록했죠.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2008년 10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매출이 2000억원대로 뚝 떨어졌어요. 또 5년 전에는 알제리 정권이 교체되면서 그곳에 완공 단계에 있던 자동차 조립공장을 열 수 없어 100억원의 손실을 봤죠. 가장 최근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기를 맞았고요.”
- 어느 정도의 피해인가요.
“전쟁 발발 전인 2021년만 해도 러시아에서 승용차 판매 순위는 러시아 현지 기업 라다가 1위, 기아차와 현대차가 2·3위였어요. 그런데 서방의 대러 제재로 더 이상 우리 차를 러시아에서 만들 수도, 판매할 수도 없게 됐잖아요. 현대차도 러시아 공장 가동을 중단했으니까요. 저도 당연히 피해가 막심하죠.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어요. 중국으로 갔죠. 현재 러시아 승용차 시장의 70%를 중국 자동차가 차지합니다. 그중 약 5%를 영산그룹이 공급하고 있어요.”
- 사업에 부침이 많은데, 평소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나요.
“제가 차세대 경제인이나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어요. 하루 24시간 중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양치 후 단 5분만이라도 거울을 보며 자신과 대화를 나눈 후 웃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영감이 생기거든요. ‘박종범, 너는 오늘 하루 뭘 하며 보낼 거야? 어제 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며 스스로를 객관화해 돌아보죠. 그리고 웃는 연습을 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예요. 그러한 평소 습관이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데는 무엇보다 신앙(가톨릭)의 힘이 컸습니다.”
- 거울 앞에서 자신과 대화하고 웃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긴 건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를 가르친 이기순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저도 실천해왔죠. 그러니 50년도 더 된 습관입니다. 하하하…”
클래식 포함 K컬처 위상 상상초월
- 문화예술에도 관심이 많다죠. 부인 송효식씨가 대표로 있는 문화예술기획사 ‘월드컬처네트워크(WCN)’가 빈 소년합창단, 빈 심포니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비롯해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과 한국 아티스트들의 유럽 공연을 주관하더군요.
“2007~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이 한창 잘될 때였어요. 매해 10월3일 개천절이면 전 세계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서 외교관과 교민들을 불러 식사하는 행사가 있어요. 저는 좀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박노벽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께 개천절에 2부 행사로 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어요. 제가 우크라이나 국립오케스트라와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인 아티스트의 초청 비용을 대서 한·우크라이나 친선 공연을 마련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제 사업체가 있는 다른 대사관에서도 요청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7개국에서 행사를 하게 됐습니다. 이럴 바에야 회사를 차리는 게 좋겠다 싶어 아내와 의논해 2012년 WCN을 세운 거예요.”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그는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장(2010~2013년), 유럽한인총연합회장(2011~2015년)을 역임했다. 2012년에는 교민들의 모금으로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을 건립하고 이곳에 한글학교도 입주시켰다. 2013년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황금명예훈장을 수훈했다. 부인 송씨도 올해 이 훈장을 받았다.
- 주재원으로 처음 나간 시절과 비교하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오스트리아에서도 K컬처가 큰 인기인가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웃음). 경쟁하듯 떡볶이, 치킨 같은 한국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 12·3 불법계엄 때는 어땠습니까.
“당시 저는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정말 놀랐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재외동포들은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는데, 한순간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발생했으니까요. TV를 보기조차 두려워 아내와 그날 술을 진탕 마셨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던 저로선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 계엄 해제 후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뭐라 하던가요.
“웃죠. 잊고 있었는데, 너네가 민주화되고 잘살게 된 게 얼마 안 된 일이지? 합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 대한민국 정부가 재외동포 경제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길 바랍니까.
“대한민국이 안정적인 선진국가가 되려면, 강소기업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오스트리아는 관광수입으로 먹고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건 5%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강소기업들에서 나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해요. 정부가 ‘AI 3대 강국’을 실현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기업을 많이 육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미 동맹은 기본이지만 중국, 러시아하고도 잘 지내야 해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반중국 정책에 이어 지금도 일부 보수당 의원과 시민들의 혐중 발언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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