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레플리카사이트 [역사와 현실]이념 정치의 현실적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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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6-08 17:06본문
“지금 수령은 예전의 제후(諸侯)와 같다. 백성의 일을 내가 친히 맡을 수 없으므로 그대들을 뽑아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나의 마음을 몸으로 받들라. 백성들은 항심(恒心·변하지 않는 도덕적 마음)이 없어 절용(節用)하지 못하니 그대들은 백성들에게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해 생활을 즐겁게 하라. 근래 가뭄이 들고 금년 겨울은 기후가 불순하여 내년 일이 걱정되니, 각각 그 직책에 충실하여 성심껏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구휼하라.”(<세종실록> 1427년 12월12일)
지방관을 파견할 때 조선의 왕들이 으레 하는 말이지만, 세종의 말에는 특별한 힘이 실려 있었다. 백성들에 대한 마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관들이 자신을 대리하므로, 백성들은 지방관을 통해 왕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을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을 몸으로 받들어달라 당부한 이유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라고 했다.
세종의 이 말은 2300여년 전, 맹자가 양나라 혜왕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맹자는 왕도 정치 실천을 망설이는 혜왕에게 이념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덕목을 내놓았다. 집 주위에 다섯 이랑 정도 뽕나무를 심게 해 백성들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게 하고, 닭과 돼지 등을 시기에 맞춰 기르도록 함으로써 백성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나아가 한 가족이 100이랑 정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되, 농사철에 백성들을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라고 말했다. 도덕을 가르치는 학교는 그 이후의 문제였다.
이념 정치인 왕도 정치를 위한 덕목치고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러나 맹자는 효제(孝悌)와 같은 도덕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기반 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정적 소출이 없으면 도덕성을 지켜가는 마음, 즉 항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맹자의 말은 이러한 인식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맹자는 양나라 혜왕을 향해, 이를 실천하고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백성의 삶을 우선시하는 왕이 훌륭한 왕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최고의 이념 정치인 유학의 왕도 정치도 그 기반은 백성들의 안정적 삶에서 출발하고 있다.
지방관을 보내면서 했던 세종의 당부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나왔다. 자신의 정치가 먼 이념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장해 백성들의 생활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백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파악하고, 그러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을 성심껏 어루만지고 구휼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왕정 시대를 지나, 지역 책임자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새롭게 선출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말로 대표되는 많은 정치 이념들을 걷어내면, 결국 남는 것은 지역민들의 삶과 생활이기 때문이다. 내란 극복도 중요하고 보수의 이념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지역을 맡은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권고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식민지 조선의 황금광 시대
문학작품은 때로 시대상이나 공간을 기록한다. 1930년대 서울의 풍경을 엿보고 싶다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권한다. 이 소설은 소설가 구보가 노트를 들고 하루동안 경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찰한 도시와 풍속을 오롯이 담고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박태원이 1934년8월1일부터 9월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30회 연재한 중편소설이다. 신문 연재소설이다보니 삽화가 있는데 삽화를 그린 이는 하융이라고 돼 있다. 하융이 누굴까. 소설가 이상이다. 박태원과 이상은 막역한 친구였고, 구인회 멤버였다.
구보는 박태원의 호다. 그러니까 소설 속 주인공 구보는 사실상 박태원 본인이다. 구보는 도쿄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지금은 뚜렷한 직장없이 소설로 푼돈을 벌고 있는 26세의 청년. 이날도 구보는 점심께 느즈막이 일어나 집을 나선다. 천변길을 따라 광교로 걷다가 종로네거리로 갔다가 전차선로를 건너 조선인 자본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상회 안으로 들어간다. 상회를 나와 전차를 탄다.
전차는 훈련원을 지나 약초정을 지난다. 약초정은 지금의 을지로 3가와 중구 저동 부근이라고 한다. 조선은행앞에서 내린 구보는 장곡천정, 즉 소공동으로 향한다. 다방에 들러 가배를 마시고 담배를 피며 잠시 쉰 구보는 부청, 즉 서울시청쪽으로 걷는다.
구보는 이 여정에서 행복해보이는 젊은부부, 예전에 선을 보았던 여성, 과거 자신이 알아보지 못했던 한 남자를 만나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구보는 특별한 사건없이 그저 거리를 걸으면서 마주치는 풍경들, 사람들을 보며 머릿 속에 떠오르는데로 파편화된 상념과 기억, 감상을 기록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라 ‘발단-전개-위기-절절-결말’로 스토리를 형성한다. 하지만 <구보씨의 일일>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 생각의 흐름을 좇아 내면적 심리변화, 파편화된 현실에 집중하는데 이는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한국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이유다.
구보는 걷다가 창작을 위해 서소문정 방면으로 답사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든다. 그러다 곧 “‘모데로노로지오’를 게을리 하기 오래다”라고 자책한다. 모데로노로지오란 모더놀로지(modernolgy) 즉 고현학을 말한다. 고현학(考現學)이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현재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땅속에 묻힌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 옛날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는 ‘고고학(Archaeology)’처럼 거리의 옷차림, 건물, 가방안 소지품, 지하철 안의 풍경 등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유행, 풍속,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 양식, 문화현상을 분석한다.
뙤약볕을 이고 걷던 구보는 경성역 대합실로 들어가는 데, 개찰구 앞에서 낡은 파나마 모자에 모시 두루마기 노랑구두를 신은 두명의 사내를 만난다. 구보는 한눈에 이들이 무직자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대합실 안팎을 둘러보는데, 이곳저곳에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구보는 말한다. “이 시대의 무직자들은 거의다 금광 브로커가 틀림없다”고.
1930년대 조선에는 골드러시가 있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무수한 광무소가 산재해 있고, 출원 등록된 광구는 조선 전땅의 칠할이었다고 당시의 시대상을 기록한다. 또 인지대는 백원, 열람비는 오원, 수수료는 십원, 지도대는 십팔전이었다며 광산개발 허가 비용도 언급한다. 구보는 말한다. “지금은 시시각각 사람들이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해간 황금광시대”라고. 그리고 이런 사람들 무리에는 평론과 시인 같은 문인들도 끼어있었다고 증언한다.
1930년대 조선에는 어떻게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는 골드러시가 생겨났을까? 여기에는 식민지를 수탈하려는 일제의 산금(産金)정책이 있었다. 1930년 대공황으로 국제금융질서가 무너지면서 금본위제를 지탱하는 금의 가치가 폭등했다. 여기에 1931년 만주사변으로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일제는 조선에서 금 생산을 독려하는 산금정책을 강력하게 폈다. 시설 자금을 보조해주거나 금 채굴 절차를 간소화해주면서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금광 사업에 뛰어들도록 했다.
앞서 조선광업령에 따라 땅주인이 누구든 상관없이 땅 아래에 있는 광물은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됐다. 조선총독부는 광산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광업권을 내줬다. 채굴할 수 있는 권리인 광업권은 전매가 가능해 그 자체로도 큰 돈이 오갔다. 대공황으로 농촌사회가 붕괴되고 도시에서도 많은 공장이 무너지자 지식인, 농민,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가 금광을 찾아 산으로 들로 뛰어들었다. 경교장을 지은 최창학,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 화신상회를 인수했던 박흥식이 광산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황금광시대는 조선경제를 부흥시키지는 못했다. 정보를 독점한 일본인이나 소수의 친일인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중들은 금맥을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써야할 지식인이나 농사를 지어야할 농민들이 생산적인 일을 포기하고 광산투기에 뛰어들면서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혼란은 더 커졌다.
광산개발로 번 돈은 공장설립으로 이어지지 않고 백화점 등에서 사치소비나 또다른 투기로 흘러들었다. 경성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자립적인 경제적 토대는 마련되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이른바 네델란드병이 조선사회를 강타했다.
네델란드병(Dutch Disease)이란 특정 천연자원의 생산이 급증해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면 일시적으로 경제 호황을 누리지만, 그 때문에 국가 전체의 제조 및 서비스업 경쟁력이 약화되어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1959년 네덜란드가 북해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을 발견한 후 겪었던 부작용에서 유래했다. 원자재 수출이 급증해 많은 달러가 유입되면 자국의 화폐가 가치가 빠르게 오른다. 이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공산품의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은 급증해 실업이 늘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불황으로 이어진다. 원유수출이 많은 중동과 남미, 특수광물 수출이 많은 아프리카의 주요국가들의 산업기반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구보는 황금광시대를 언급하며 저도 몰래 무거운 한숨 쉰다. 일확천금에 눈멀어 내부적으로 무너져내리고 있는 조선사회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리 없다.
아들이 월급자리라도 구할 생각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혹은 공연스레 밤중에 나돌아 다니는 것이 어머니는 보기에 딱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동경에 건너가 공부까지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해도 일자리가 없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거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진짜로 그랬다. 일제에 부역하지 않으려 취직을 피하기도 했지만, 자립적 산업기반이 없어 좋은 일자리가 없기도 했다.
경성은 모던하게 발전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청년은 어디 갈 곳도, 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소설가 구보의 일일>이 한량들의 경성유람기로 읽히지 않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우울함과 좌절감, 무력감이 기저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광명 인구는 늘어났는데 교량이라든가, 고가라든가 이런 건 비좁고 하니까 교통이 되게 불편하죠. 여기 다닌 지 20년 넘었는데 개선된 건 하나도 없어요.”
5월 29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G밸리(디지털산업단지)에서 만난 백수홍씨(41)는 ‘6·3 지방선거로 바뀌었으면 하는 점’에 대해 묻자 “기대를 접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6·3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이날까지도 백씨는 마음에 정한 후보가 없다고 했다. 백씨가 사는 경기 광명시에서는 출퇴근길 교통체증이 가장 큰 현안이지만, 서울시와의 협조가 필요한 이 문제에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기도민인 백씨가 교통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서울 정치인을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산동 한 의류회사에서 일하는 양완식씨(64)도 비슷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양씨는 출퇴근 교통난을 가산동 현안으로 꼽으면서도 정책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기(금천구)서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인천에 살면서 가산동으로 통근하는 개발자 김도우씨(26)도 “금천구 공약 중에는 바뀌면 좋을 것이라고 체감될 만한 건 없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곳과 일하는 공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각각 광명과 영등포, 인천에 살지만 하루 대부분 시간을 가산동에서 보낸다. 이른바 ‘생활(체류)인구’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지가 아닌 지역을 통근, 통학, 업무 등의 목적으로 방문·체류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가 광역화됨에 따라 생겨난 개념이다.
이들은 소득·소비 활동을 통해 지역에 기여하고 지자체 행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데도 정작 정치적 절차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선거철 정치권은 투표권이 있는 정주인구의 민심에만 촉각을 세운다. 후보들은 출퇴근 교통 같은 생활권 의제보다 선거철 신도시 개발·구도심 재개발 등 부동산 공약을 전면에 내건다.
이번 서울시장선거 역시 출퇴근 교통이나 생활권 문제보다 부동산정책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견제하겠다고 내세운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정주인구 중심의 선거 구도는 다시 한번 확인됐다. 광역통합이나 복수주소제 등이 변화를 만들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주간경향은 선거 직전인 5월 29일과 6월 1일 양일간 서울의 대표적인 생활인구 밀집 지역인 금천구 가산동을 찾아 ‘투명도시’의 민낯을 살펴봤다.
“직장인이 많으니까 출퇴근 시간에 너무 붐벼요. 제가 다니는 직장에도 금천구 주민은 거의 없고 서울 다른 구에 사는 사람 반, 경기도에 사는 사람 반 정도 돼요.”
사전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회사원 주상아씨(28)는 가산동의 특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통계상으로도 가산동은 종로, 강남, 여의도 등 전통적인 도심을 제외한 지역 중 야간 인구 대비 주간 인구 수가 가장 높은 곳에 속한다. 서울시-KT 서울 생활인구 통계에 따르면 가산동의 평일 야간 생활인구는 약 4만7600명인데 반해 평일 낮 동안 생활인구는 약 10만3200명으로 2배가 넘는다. 서울 424개 행정동 중 12번째로 높은 수치다.
가산동은 낮시간 ‘서울 외에서 유입’된 생활인구 비율도 33.9%(3만4936명)로 서울 424개 행정동 중 가장 높다. 가산동에서 마주치는 시민 3명 중 1명은 지선 투표로는 이 지역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에 따르면 이처럼 시·도 경계를 넘어 통근·통학하는 인구수는 전국적으로 약 325만명(2020년 기준)에 달한다.
도시 인프라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높은 생활인구 밀도는 교통체증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2026년 4월 평일 오전 8~9시 기준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리는 승객 수는 한국철도공사·서울교통공사 전 역 중 1위다. 경기에서 가산동 방향 도로는 만성 정체고, 버스도 승객들로 가득 찬다. 가산동에서 직장생활 중인 20대 후반 여성 송모씨는 “수출의 다리 쪽에 한번 갇히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마을버스도 별로 없는데 배차 간격도 엄청 길다”고 말했다.
교통 문제는 일부 지역에서 안전 문제로 비화하기도 한다. 2023년 출근 시간대 김포골드라인 전동차 안에서는 호흡 곤란 증세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생활인구라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는 문제다. 지자체 행정의 우선순위가 생활인구보다 정주인구에 있기 때문이다. 생활인구의 소비·사업장 활동 결과 지자체 세수로 걷히는 부가가치세(지방소비세), 법인 지방소득세 등도 통상 관내 주민 복리를 위해 쓰인다.
정치권 역시 표가 되지 않는 이들의 바람에는 무관심하다. 지선 기간 가산동에 걸린 선거 현수막에는 직장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은 없었다. ‘데이터센터 전면 불허’, ‘기업 유치’, ‘공군부대 부지 개발’. ‘돌봄을 촘촘하게’ 등 거주 주민들을 겨냥한 정책이 주로 담겼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구에 살면서 가산동으로 출퇴근하는 최재혁씨(49)는 데이터센터 공약을 아느냐고 묻자 “잘 모른다. 여기는 교통이 제일 문제”라고 답했다. 최근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여성 이모씨는 하수구 악취와 러브버그 등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으며 “저도 (문제 해결을 위해) 이쪽에 투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산동에서 건축 관련 자영업을 하는 백수홍씨는 하루 10시간 넘게 금천구에서 일을 본다. 그는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금천구에서 행정 서비스가 원활히 되는 게 중요한데 관련 공약은 본 적이 없다”며 “가장 이슈가 되는 부동산 이런 얘기만 하니까 아쉽다. 정책적으로 이런(행정 간소화) 부분을 반영해줬으면 하지만 (정치) 구조상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표가 되지 않는 곳’이다 보니 선거운동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선 막바지인 6월 1일에도 가산동 G밸리 일대는 ‘선거 무풍지대’였다. 유세차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선거 노래도, 선거운동원들의 커다란 팻말과 율동도 없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역 7번 출구에서 김밥을 판매하는 50대 여성 A씨는 “올해는 여기서 선거운동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며 “여기(지하철역)는 사는 사람(주민)이 안 다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선거철 정치권이 생활인구를 일종의 ‘유령’ 취급하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주인구 중심으로 설계된 선거 구조에서 애초에 내세울 수 있는 공약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반박이 나온다. 이번 지선 국민의힘 공약 개발에 관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구조상으로는 부동산, 재개발 등 토목 이슈를 위주로 공약 개발을 하게 된다”며 “직장이나 직장 근처에서의 불편이 있다고 (거주지) 정치인을 욕하는 건 아니지 않나. 후보들은 주거환경 이런 부분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금천구청장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주민 동의 없는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공약을 내세웠다. ‘전자파가 건강과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금천구 주민 여론을 반영했다.
특히 대선·총선보다 더 작은 단위의 선거를 치르는 지선은 선거구와 생활권 불일치가 커 정주인구 중심의 정책 설계 경향이 더 크다. 금천구를 예로 들면 서울시의원 금천구 제1선거구는 가산동과 독산1~4동, 금천구의원 가선거구는 가산동과 독산1동 주민만을 유권자로 둔다. 해당 선거구 서울시의원, 금천구의원 후보 선거 공보물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데이터센터 건립 백지화를 우선적으로 내세우고 부동산 개발 공약을 강조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안 중 하나가 광역통합론이다. 관할 지자체가 나뉘어 있다면 상호 협력을 전제해야 하는 일들을 상위 단위에서 해결하자는 것이 골자다. 실제로 이번 지선에서 처음으로 통합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는 후보들이 교통·의료망 등을 통합해 효율적이고 입체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시민 참여 제도를 통해 주소 중심 정치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핵심은 세금이 있는 곳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복수주소제를 채택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4년 발간한 ‘인구감소지역 복수주소제 도입의 가능성과 한계’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시민은 생활 중심지를 ‘주거주지’로, 추가 거주지를 ‘부거주지’로 등록할 수 있다. 부거주지에도 제2주택세 등 세금이 부과되는 만큼 부거주지 주민도 주거주지 주민과 유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복수주소제가 부동산 투자나 학군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정부 들어 확대 추진 중인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 등의 혜택만 누리고 실질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복수주소제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정확한 정책 수요를 파악하고 예산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복수주소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영근 한국행정연구원 정부조직디자인센터 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생활인구 개념은 너무 포괄적이라 지자체가 인위적으로 산정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의미 있게 집계하려면 복수의 주소를 인정해서 등록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행정 수요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예산도 그 수요를 바탕으로 요구, 집행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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