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상위노출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채권시장, 정부의 능력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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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5-29 06:25본문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미덕은 빚을 지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갚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부채 영역에서는 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정부가 지출을 과감하게 줄이는 이른바 ‘재정 긴축’을 단행하기란 정치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부채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험이 좋은 사례다.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무려 119.1%에 달했다. 하지만 이 비율은 1971년에 31%까지 급락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정부가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긴축 정책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세계 경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지안의 전성기였기에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대신 미국은 세수의 기반이 되는 ‘성장률은 최대한 높이고’, 부채에 수반되는 비용인 ‘금리는 최대한 낮추며’,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거시경제 조합을 구사하면서 부채 문제를 해결했다.
국채 금리 상승에 확장 재정 시험대
이는 실질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의 함수인 명목성장률보다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과 다름없었다. 명목성장률이 대출 금리보다 높으면 시간을 보내면서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채무자인 정부에는 축복과도 같지만, 여윳돈을 금융기관에 맡긴 예금자(채권자)에게는 실질구매력을 약화시키는 불리한 정책, 즉 일종의 ‘금융 억압’에 가까웠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연결고리는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명목성장률을 끌어올리고 돈으로 갚아야 할 부채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양날의 검이다.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하면 채권시장의 발작을 불러와 국채 금리가 급등하게 되고, 이는 정부의 이자 지출 부담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자충수가 된다.
더 나아가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공동체 자체를 파괴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 겪었던 초인플레이션이 단적인 예다. 초인플레이션은 부채의 가치를 순식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승전국들의 부채 탕감 프로그램인 ‘도스 플랜’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극단주의를 키워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부채 희석을 위한 인플레이션 용인은 매우 정교한 조율이 필요한 외줄타기인 셈이다.
최근 일본의 행보는 2차 대전 직후 미국의 부채 해결 방정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듯 보였다. ‘제2의 아베’를 표방하며 등장한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왕성한 재정지출을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0년 말의 228%에서 2025년 말 206%까지 하락했다. 경제가 오랜만에 활력을 찾고 물가가 오르면서 명목성장률이 크게 상승했고, 부채 부담은 자연스럽게 희석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국채 금리도 함께 상승했지만, 여전히 명목성장률을 밑도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 정부가 재정건전성 확보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제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면서 채권시장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국채 금리가 동반 상승했지만 잠재성장률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한국과 미국은 감내할 만한 금리 레벨이고, 영국과 일본이 취약해 보인다. 이달 들어 영국과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는 향후 명목성장률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파괴적인 수준까지 상승했다.
필자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죄악시하는 긴축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장기 불황기 동안 일본 정부가 펼쳤던 공격적인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이다.
정부, 효율적 사용 능력 증명해야
당시 일본 정부의 지출이 주로 지방의 토목사업에 집중되면서 예산의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 경제가 완전히 활력을 잃은 상태에서, 정부마저 재정건전성이라는 교조적 도그마에 집착해 지출을 줄였다면 일본 사회는 훨씬 더 참혹한 추락을 경험했을 것이다. 본받을 만한 최선의 모범 사례는 아닐지언정, 급격한 자유낙하를 막아낸 최후의 완충장치 역할을 일본 정부가 해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국채 금리는 정부가 행하는 재정지출의 정당성과 신뢰도를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시장의 잣대’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GDP 대비 정부부채가 50%대에서 200%대까지 급증했음에도, 당시 일본의 국채 금리는 계속 하락했다. 금리는 다름 아닌 ‘돈의 가치’이자 자금 수요와 공급의 접점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음에도 금리가 떨어진 이유는, 민간 경제에 자금 수요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을 당겨 써도 민간의 기회를 빼앗는 부작용이 없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세계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한정된 경제적 자원을 두고 정부와 민간이 경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행동이 민간의 경제활동을 잠식하는 전형적인 ‘구축효과’가 채권시장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국면에서는 아무리 확장적 재정을 지지하는 진보주의자라 할지라도 채권시장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치솟는 국채 금리는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과 경제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장적 재정이 꼭 필요하다면, 민간이 쓰는 것보다 정부가 이 한정된 자원을 훨씬 더 효율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확고한 능력을 시장에 증명해 보여야 한다. 채권시장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가격으로 평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 허위로 계엄선포문을 작성한 혐의를 받는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박옥희)는 28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받는 강 전 실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강 전 실장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인 2024년 12월6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사전에 부서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명한 문서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처럼 허위 계엄 선포문의 표지를 작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강 전 실장이 해당 문건에 한 전 총리, 김 전 장관, 윤 전 대통령 순서로 서명을 받고 이를 자신의 사무실에 보관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강 전 실장은 내란 혐의 수사가 본격화하자 한 전 총리로부터 “사후에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내가 서명한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라는 말을 듣고 문건을 파쇄한 혐의도 받는다.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법이 2030년까지의 탄소감축 목표만 정하고 2031~2049년 목표는 제시하지 않아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회가 헌재가 제시한 법 개정 시한이 임박한 지난 2월 초 감축 목표·경로 등에 대한 공론화 절차에 착수했고, 그 절차 중 하나인 시민대표단의 숙의 결과가 지난달 13일 나왔다. ‘더 빨리, 더 많이’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 다수의 뜻이었다. 다만 이번 공론화는 기후위기 대응 전반이 아니라 주로 감축 목표·경로에 관한 것으로, 조기 감축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백가쟁명 중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의 전력수요 급증에 따라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탄소감축과 ‘AI에 따른 전력수요 증대’라는 두 개의 변수가 원전 증설론에 힘을 싣는 듯한 형국이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56)은 재생에너지 중심 체제로 가기 위한 ‘전력시장 개혁’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정부의 가격 규제를 받는 한국전력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는 체제는 유연한 전기요금제가 필요한 재생에너지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최적화된 민간 전기사업자가 전력 판매시장에 들어와 혁신적 요금제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전력 판매시장 민영화에 따른 폐해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전력시장 규제기구를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부작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 전문위원은 AI 데이터센터로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원전을 증설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1990년대 후반 미국 닷컴버블 때 광케이블이 과잉 설치된 것을 반례로 제시했다. 광케이블 데이터 전송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기술이 개발되면서 광케이블이 유휴 설비가 됐던 것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해서도 안전 비용을 줄이기 어려운 만큼 경제성도 낮아 ‘실체가 없는 버블(거품)’이라고 규정했다.
- 현재 국내 원전 현황은 어떤가요.
“지금 원전이 26기가 가동 중이고요. 이미 건설 중인 게 4기입니다. 여기에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2024~2038년)에서 신규 원전 2기, SMR 1기를 짓기로 했고요. 원자력계에선 연말에 나올 12차 전기본(2026~2040년)에 추가로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을 짓는 데에만 15년 걸린다”며 “발전소를 지을 곳도 없고 SMR은 기술 개발이 아직 안 됐다”며 원전 증설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토론회, 여론조사 등을 거쳐 원전 신규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올해 1월 공식화했다.
- 이재명 정부의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기존에 건설 중인 4기하고 11차 전기본에 있는 원전 2기 건설은 행정절차에 따라 결정된 것이니 바꿀 수 없지만 12차 전기본에 새롭게 2기를 추가하는 건 안 하겠다는 취지로 보여요. 정부 계획대로라면 원전 6기가 추가 건설되는 것인데 국내 전력망 운영에 굉장한 부담을 주게 됩니다. 원전 확대를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제로섬 관계라 양립이 어려워요.”
- 왜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충돌하나요.
“경제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있는데요. 경제적 측면을 보면 ‘경제급전’ 원칙이라는 게 있어요. 연료비가 저렴한 순서대로 전기를 전력망에 보내는 원칙인데요. 기존에는 원전이 가장 연료비가 저렴한 발전원이었는데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가 들어오면서 충돌이 발생합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도매 전기가격이 내려가면서 원전의 판매 수익이 위협을 받는 거죠. 한국은 아직 이런 수준까지 온 상태는 아니지만 원전 발전 비중이 67%가량인 프랑스는 태양광 출력이 늘어나는 낮 시간대에 도매 전기가격이 마이너스로 내려가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원전 출력을 낮추거나 정지하게 되면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 기술적 측면에선 어떤 충돌이 발생하나요.
“주변 나라들과 전력망이 연결돼 있는 프랑스 등 유럽과 달리 한국은 고립된 전력망이라 기술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전력거래소는 대형 원전이 불시 정지하며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데요. 과거엔 큰 문제가 안 됐습니다. 원전과 달리 발전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가스발전이 일종의 예비력이 됐기 때문이에요.”
- 그런데 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늘면서 상황이 달라진 건가요.
“그렇죠. 봄철 전력수요는 줄어들지만 태양광은 정상 출력을 내기 때문에 연료비가 비싼 가스발전 운전이 줄게 되는데요. 원전 불시 정지 때 순간적으로 수급 균형을 맞춰줄 예비력이 감소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전력거래소는 정전 예방을 위해 원전 출력을 줄여 운전하는 ‘출력 감발’을 하게 합니다. 예정에 없던 일부 원전 정비까지 진행되고요. 재생에너지가 더 늘면 신규 원전은 정상 가동이 어려워 수조원의 투자를 회수하지 못하는 ‘좌초 자산’이 될 수 있어요.”
현재 국내 원전은 핵연료 교체 주기인 18개월 중 27일 내외에 한해 발전량을 80%까지 줄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감발 정도를 높이거나 자주 감발하면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월 정책토론회에서 2032년까지 1년 중 100일 내외로 발전량을 50%까지 줄일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한국의 원전은 미국 원전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상시적 출력 감발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안전 규제를 준용하고 있다).
- 정부는 원전을 탄력적으로 운전해 재생에너지와의 충돌을 막겠다는 접근 같은데요.
“한수원이 원전의 유연한 출력 변화를 위한 R&D를 한다고 한들 그게 언제 상용화될지도 모르는 데다 안전 규제상 그걸 허용해줘야 할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매우 불확실한 구상인데 마치 해결 가능한 것처럼 공론화 토론회에서 이야기를 한 셈이에요.”
- 최근 미국 빅테크가 SMR에 많이 투자를 하고 있던데요. SMR은 기존 대형 원전의 대안이 될 수 있나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버블’이라고 봅니다. 원전은 발전 용량을 아무리 낮춰도 안전 비용이 그렇게 많이 줄지 않아요. 핵분열로 인한 사고를 막는 데 드는 비용을 낮추는 게 쉽지 않거든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처음으로 SMR 설계 인증을 받은 ‘뉴스케일’이 유타주에서 SMR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2023년 비용을 못 줄인 탓에 결국 사업이 좌초됐습니다. 가장 구체화된 SMR 설계도를 갖고 있는 뉴스케일조차 유타주에서 퇴짜를 맞은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 발주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 정부는 AI 시대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급증 때문에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요.
“원전 합리화 근거인 데이터센터 역시 버블이 꺼질 거라고 봐요. 정보기술(IT) 분야의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가 전력 분야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기 때문인데요. 하드웨어인 반도체는 거의 2년마다 2배씩 전력효율이 개선되고 있고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딥시크의 ‘전문가 혼합’(MoE) 모델, 구글의 ‘터보퀀트’ 등 전력효율 개선 기술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 과거 닷컴버블 때와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1990년대 말 미국 닷컴버블 때 전력수요가 급증할 수 있어 석탄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몰이가 있었는데요. 데이터 전송 시 전력소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인터넷 트래픽과 개인 컴퓨터의 전력수요가 2010년 미국 전력소비량의 50%까지 폭증할 것이란 게 석탄업계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섬유 케이블의 전송 효율을 높이는 기술 혁신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닷컴버블 붕괴 직후인 2002년 9월 당시까지 설치된 광섬유 케이블 중 미사용 케이블이 97%가 넘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에 대한 과대 추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 정부가 최근 ‘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기가와트),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 이상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적극적 목표를 제시한 것은 과거 정부에 비해 진일보했어요. 다만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부족해 보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요.
“예를 들어 당장 태양광 발전을 늘리고 싶어도 배전망 접속 문제가 있습니다. 한전이 배전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태양광 발전의 접속을 불허하는 사례가 있어요. 한국은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신규 송배전망 건설이 쉽지 않아 기존 송배전망 효율을 높이는 게 필요합니다. 한여름 고온과 저항열 때문에 송전선로가 아래로 처지면서 사고가 날 수 있어 설비 이용률이 50%로 제한돼 있는데요. 미국은 365일 매시간 단위로 기상을 예측해 이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어요. 기온이 낮으면 낮은 만큼 송전 허용량을 늘리는 겁니다. 우리도 이런 방식을 준용해 효율 개선을 해야 해요.”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2024년 기준) 평균이 34.4%인데 한국은 9% 입니다. 한국이 에너지 전환이 느린 이유가 있나요.
“가장 큰 문제는 전력시장 제도와 운영, 전력망 인프라가 여전히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전통 발전기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입니다. 대형 원전과 석탄발전 중심으로 송전망 건설이 진행되는 게 대표적 사례예요. 예컨대 한전이 추진 중인 가장 큰 사업이 동해안 원전·석탄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 건설입니다.”
-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요.
“재생에너지는 안타깝게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화석연료 발전에 비해 변동성이 큽니다. 하지만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적응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화석연료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우선 공급 측 유연성이 필요한데,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양수발전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이 더 많아져야겠죠. 공급 측 유연성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수요 측도 유연해져야 해요. 소비자들이 전기의 가치가 시간과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 전기요금 체계 손질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현재 전력 판매시장은 한전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데요. OECD 회원국 중 국가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에요. 판매시장을 개방해 경쟁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IT 기반 혁신 전기사업자들이 시장에 들어와 ‘태양광·풍력 출력이 많을 때는 저렴하게, 화석연료 출력이 많을 때는 비싸게’ 하는 요금제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물가·선거를 의식하는 정부가 요금 규제를 하는 한전은 혁신을 주도할 수가 없어요.”
- 낮 전기료는 내리고 저녁 전기료는 올리는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안이 지난 4월 시행됐고, 지역별 차등요금제도 추진되고 있긴 한데요.
“지금은 전국 단일요금 체계인데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시행하면 지역별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기 도매가격이 형성됩니다. 수도권은 전력자급률이 3분의 2밖에 안 되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고, 비수도권은 내려가게 되겠죠. 문제는 기존 전력시장과 미스매칭이 있다는 점입니다. 한전과 발전사업자 간 거래가 이뤄지는 도매시장에서 매일 지역별 가격이 달라지면 이를 소매요금에 어떻게 반영할 거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기존 한전 체제에서는 이걸 운영하기가 어려워요. 지역별 차등요금제에 더해 산업용 전기가 아닌 영역에서도 시간대별로 변동하는 요금제가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 시간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전기의 가치를 반영한 요금제를 잘 운영하는 사례가 있나요.
“대표적 사례가 영국 ‘옥토퍼스 에너지’입니다. 이 민간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온 지 10년이 안 됐는데 영국 전력시장 점유율 1위가 됐어요. 옥토퍼스는 풍력이 많이 발전되는 심야 시간대에 전기차를 충전하면 전기요금을 많이 아낄 수 있는 요금제 등을 운영해요. 전기차 충전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의 3분의 1 수준인데요. 이 정도는 돼야 전기소비자 행동이 실제로 바뀝니다.”
- 전력 판매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요금 급등, 전력공급 불안 등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나요.
“민간 자본이 과도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다루라고 만든 게 전력시장 규제기구입니다. 한국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전기위원회가 있는데 의사결정권이 없는 심의기구에 가깝습니다. 해외에선 독립적인 전력시장 규제기구가 가격 규제도 해요. 민간 전기사업자의 과점, 담합 등에 대해 별도로 전문화된 규제를 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어요.”
- 비전문적인 전기요금 규제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나요.
“수십년간 전기요금이 정치적으로 통제되면서 한전 부채가 지나치게 커졌는데요. 지난해 한전 부채가 200조원을 웃돌고, 하루 이자 비용만 119억원입니다. 재생에너지 투자 등으로 가야 할 돈이 엉뚱하게 금융권으로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전기요금을 정상화해 한전 부채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 한국은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전환 정책이 오락가락하는데 해외는 어떤가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했고, 유럽에서도 네덜란드·스웨덴 등의 우익 정당이 신규 원전 건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착공이 안 되고 있어요. 한국과 달리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 사업자들이 원전을 짓는데, 안전 규제 등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정권이 뭐라고 하든 새로 투자하려는 사업자가 없습니다.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의 대다수는 재생에너지예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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