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간 홀로 땅 속에 있던 전사자의 유해···훈장과 함께 가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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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4-05-31 23:20본문
고 김희정 중위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3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만주에서 타국살이를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경남 창녕군으로 인스타 좋아요 구매 돌아왔다. 국방경비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김 중위는 제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해 9월 5일 ‘가산 - 팔공산 전투’를 치르다 현지에서 장교로 임관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측면을 지키는 전투였다. 그해 8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북한 1사단은 경북 칠곡 일대에서 대구로 남하를 시도했는데, 그 길목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장교로 임관한 지 보름 만이 9월 19일 김 중위는 전장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공로로 그에게는 1954년 10월 은성 화랑무공훈장 증서가 수여됐다.
그의 유해는 2022년 9월 인스타 좋아요 구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 의해 수습됐다. ‘가산면 용수리 인근 야산에서 전투가 치열했다’는 참전 용사의 증언과 지역주민의 제보가 바탕이 됐다. 유해는 판초우의를 착용한 상태로 경사면에 곧게 누워 있었다.
국유단은 지난 23일 김 중위의 신원을 확인했다. 역시 어렵게 구한 지역별 전사자 명단에서 김 중위의 조카 김창식씨(64)를 찾았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들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국유단은 30일 서울 서대문구의 김씨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고 김 중위의 훈장을 전달했다.
김씨는 젊은 날 꽃다운 청춘에 장가도 가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때 타국살이에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참전해 전사한 삼촌의 삶이 안타깝다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던 삼촌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잘 묻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김 중위는 제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해 9월 5일 ‘가산 - 팔공산 전투’를 치르다 현지에서 장교로 임관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측면을 지키는 전투였다. 그해 8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북한 1사단은 경북 칠곡 일대에서 대구로 남하를 시도했는데, 그 길목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장교로 임관한 지 보름 만이 9월 19일 김 중위는 전장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공로로 그에게는 1954년 10월 은성 화랑무공훈장 증서가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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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단은 지난 23일 김 중위의 신원을 확인했다. 역시 어렵게 구한 지역별 전사자 명단에서 김 중위의 조카 김창식씨(64)를 찾았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들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국유단은 30일 서울 서대문구의 김씨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고 김 중위의 훈장을 전달했다.
김씨는 젊은 날 꽃다운 청춘에 장가도 가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때 타국살이에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참전해 전사한 삼촌의 삶이 안타깝다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던 삼촌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잘 묻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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